방방곡곡 새싹 돋듯…
동네서점들 파릇파릇

▲ ‘복합문화공간 숨’(북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한지 5년쯤 지났을 때, 힘겨운 일상과 모른척 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 사이의 무게가 점점 힘겨워져갔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었고 지금까지의 삶이 바탕이 된 그러나 좀 더 정교하며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하다 싶었다. 그때 만난, 길잡이가 되어준 책,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과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다.
 한참동안 여행을 가고 싶었다. 여러 여건상 불가능한 일이라 아예 생각도 안해야지 하면서도 불현 듯, 가슴앓이 하듯 삶이 무거워지면 여행관련 책을 들춰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 (백창화 김병록 저. 이야기 나무, 2011) 이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의 서점과 도서관 뿐 아니라 책 마을과 도서관련 박물관까지,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나는 어느새 파리의 서점 계단을 오르면서 벽면의 적힌 글을 읽고 있었고, 숲길을 지나 오래된 성당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런 도서관으로 숨죽이며 들어서기도 했다. 영국 도처에 있는 작은 서점들을 들락이며 책을 고르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하고, 그러면 그러한 공간을 또 여기서 꿈꾸기도 했다. 책과 사람, 추억과 미래가 함께 공유되는 곳, 나 혼자만의 세계이면서도 깊은 교감으로 이어진 또 다른-나와 같은 이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하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 그곳이 내가 있는 이곳이었으면 했다.

 

 책방을 가득 채운 건 사람의 향기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한 발짝 들어서면 꿈꾸고 채우고 지켜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말을 거는 공간이 있다. 작은 책방의 단골들은 단지 책을 사기 위해 책방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문을 여는 순간 훅 온몸을 감싸는 책 특유의 냄새처럼 책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 살아있는 공간에는 언제나 좋은 책방지기가 있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55쪽)

 그랬다. 작년 가을쯤 여러 갈래의 생각들 사이에서 지쳐있었다. 광산구 수완지구에서 마을사랑방이 되길 바라고 시작한 ‘복합문화공간 숨’(북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한지 5년이 지나고 있을 때, 힘겨운 일상과 모른척 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 사이의 무게가 점점 힘겨워져 갈 때였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었고 지금까지의 삶이 바탕이 된 그러나 좀 더 정교하며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하다 싶었다. 그때 만난,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과 함께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 김병록 저, 남해의 봄날, 2015)였다. 우리와 같은 꿈을 꾸며 저마다의 개성으로 문을 연 작은 책방들이 전국에 새싹 돋듯 이미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다. 사람살이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한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저자이니 이 무슨 조화일까 하는 생각에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책에 소개된 서점들 가운데 정말 궁금한 곳을 정하고 무작정 나선 길 - 진주와 통영, 부산을 거쳐 서울과 괴산으로 이어진 여러 차례의 여행길은 비록 피곤하긴 했지만 ‘나와 같은 이’를 만나는 순간들이었다. 다양한 책방을 통해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전에 생각했던 책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단지 공간의 차이가 아니었다.

 

 지역의 이야기 살아있는 책방

 눈에 잘 띄지 않던 책들이 어느 순간 기지개를 켠 듯 일어나 제 빛을 발하는 공간이 있다. 책방은 책을 수납하는 곳이 아니다. 책들에 새로이 생명을 부여하고 책과 독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곳, 독자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하는 곳이다. 책공간은 이야기들이 잠드는 종착지가 아니라 그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의 첫 페이지가 되어야 한다. (131쪽)

 책을 읽으며 새로운 일을 계획하다니! 이 무슨 허무맹랑 이상주의자 같은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동네 작은 책방의 서점지기로 나서자며 마음먹고 보는 책의 구절들은 모두 주옥같은 조언들이 되었다. 나만의 북리스트를 만들고 단순 서점고객이 아닌 독자와 만나고, 그리고 그 과정이 내 삶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책방으로 꾸려가리라는 방향이 잡혔다. 책방지기와 책과 독자가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일, 그리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있는 이곳, 광주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일깨워졌다.

 서점에는 무엇보다 지역의 이야기가 살아있었다. 서울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진주의 작가들, 진주의 풍성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어 지역을 스토리텔링하는 서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과 서점은 기록을 보관함으로써 기억을 불러내고 그리하여 나아갈 미래를 견인한다. 도서관과 서점이 제자리를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172쪽)

 어느새 동네 책방을 열고 두 달, 좌충우돌 하고 아직도 어설픈 운영에 애를 먹지만, 삶의 문화 어느 지점, 하나의 고리로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은 더 단단해져 간다. 여전히 사회는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로 하나를 강요하고 획일화하고, 가만히 있으라며 편을 나누고, 작은 소중한 것들을 무시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할 뿐이다. 내일도 나는 서점 문을 활짝 열어둘 것이다.

이진숙<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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