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하느니 무심한 게 낫다”

▲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무심한 엄마가 낫다.

 며칠 전 겪었던 대조적인 두 엄마 얘기다.

 신호를 한 번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되는 긴 횡단보도 앞이었다. 파란 불이 급하게 깜박이는데 신호가 바뀔 새라 한 여성이 “뛰어!” 하면서 잽싸게 뛰어간다. 그런데 대 여섯 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그 뒤를 쫓아서 뛰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슬아슬하게 건너편 도로에 도달했다. 설마 먼저 뛰어간 여자가 뒤따르던 애의 엄마는 아니겠지 했는데 그 여자가 아이의 엄마였다. 참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나! 위험한 횡단보도에서 엄마가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뛰어가고 그 뒤를 대 여섯 살 된 딸이 쫓아서 뛰어가고.

 서울에 사는 사촌 여동생한테서 의논할 게 있다며 전화가 왔다. 사촌 동생이 불안이 좀 많은 애라 걱정거리가 생기면 전화를 한다. 내용은 이렇다.

 아들이 이번에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들어가는데 걱정이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19명씩을 맡는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는 17명 담당했다는데…게다가 그 유치원은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데 자기 아들이 멋대로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라 선생님이 아이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다른 유치원은 거리가 멀고 영어유치원은 애가 왕따 당할까 걱정되고…그래서 홈스쿨링을 할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엄마들 성격 따른 아이들 심리학적 영향

 

 두 사례는 살짝 예외적이긴 해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알아서 쫓아오려니 하고 횡단보도 먼저 뛰어가고 한 엄마는 유치원에 아이 맡기는 것도 불안해한다. 중간 정도만 하면 좋으련만 엄마들의 성격에 따라 불안의 정도가 다르다.

 무심한 엄마와 불안한 엄마. 두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심리학적으로 가정해보자. 무심한 엄마의 아이는 안전한 돌봄을 받지 못하니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가 많게 될 거다. 그러면 아이들은 세상은 위험한 곳, 불안한 곳 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 불안한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이는 스스로 생존을 위해 씩씩하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한편, 불안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떨까. 엄마가 안전하게 보호해주니 세상에 대한 안전감을 느낄까. 엄마가 보호해줌으로서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안전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역으로 엄마의 불안이 아이의 내면에 들어와 세상에 용감하게 나서지 못할 수도 있을 게다.

 둘 중에 어느 쪽 엄마가 그래도 나을까. 중간이 제일 좋지만 그래도 굳이 선택을 하라면 나는 무책임해 보이는 횡단보도 엄마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유는 이렇다. 내 사촌 동생처럼 불안이 심한 엄마는 우선 본인이 괴롭다. 늘 아이의 안전 때문에 불안 불안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러니 편할 날이 없다. 그것뿐인가. 엄마만 괴로운 게 아니라 아이도 괴로울 거다. 항상 엄마의 불안에 구속되어 생활하기 때문이다. ‘늦게 다니지 마라’, ‘전화 꼭 해라’, ‘캠핑 안 된다’ ‘친구 집에서 자는 거 안 된다’ 수많은 ‘해라’ ‘하지마라’에 엄마와 아이의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엄마도 괴롭고 아이도 괴롭다.

 

 불안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횡단보도 엄마는 일단은 본인이 편하다. 가끔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마음고생 할 때도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불안감이 없으니 속은 편할 거다. 아이를 방치(?)할지 모르지만 불안감 때문에 아이를 구속 하지는 않는다. 엄마도 아이 걱정 안 해서 좋고 아이도 엄마의 구속을 받지 않아서 좋을 거다. 일단 둘이 자유로우면 괜찮은 것이다. 아이를 방치하다가 사고 나면 어쩌나 걱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모든 사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사고를 완벽하게 막으려다 오히려 아이의 자립심만 막게 되는 결과가 올 수 있다.

 그래서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무심한 것이 낫다. 세상이 험하니 불안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난다고 마음 편히 먹는 훈련을 해야 한다. 아이는 아이의 운명이 있는 거다.

 아. 사촌 동생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그건 너의 불안이니까 힘들겠지만 네가 불안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그러니 그냥 그 유치원에 보내라고.

 이 험한 세상에 불안한 엄마들이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사이코 드라마 수련감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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