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진학은 부모의 생활환경 변화 초래하는 사건

오랜만에 만난 조카 성연이는 뭔가 달라져 보였다. 웃음 대신 딱딱하고 긴장된 얼굴표정, 좋아하는 고기가 있어도 조금만 먹고, 유치원생인 두 여동생과는 잘 놀아주지도 않았다. 종종 저녁 7시쯤 되었는데 곯아 떨어져 누운 사진이 올라와 가족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녀석은 올 해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의 부모는 새내기 ‘학부모’가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 당신은 어떤가. 시작이 쉽고 금세 적응하는 쪽인가 아니면 출발이 어렵고 낮설음에 긴장하고 불안해 하는 쪽인가.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쉽게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인지 아니면 어색함과 불편함 속에서 상대방이 이야기를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쉽거나 혹은 어렵거나 사이, 어디쯤인가.
3월도 후반에 가까워졌다. 3월은 ‘시작’과 ‘변화’의 시기이다. 새 학년을 맞이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그러나 ‘새 학기 증후군’처럼 적응을 위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새로움’의 심리적 경험은 온통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때로는 낯설음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증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더 심해지면 ‘부적응’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이 일상생활의 다양한 사건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양을 조사하여 점수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배우자의 죽음과 같은 상실의 고통이 있을 때, 스트레스 양은 100이다. 업무상의 변화는 39, 배치 전환이나 전근은 36, 이사와 같은 생활환경의 변화는 25, 조카 성연처럼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스트레스 양은 26이다.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생활상의 다양한 ‘변화’와 ‘새로움’은 우선은 부정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
자녀의 진학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생활환경의 큰 변화를 초래하는 사건이다. 달라진 등하교 시간, 엄격한 규칙, 교사와의 관계 설정, 스스로 학습하고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노력 등이 부모에도 요구되고 그래서 부모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적응’은 변화를 직면한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심리적 경험이다. 사실 초등학교 입학이나 새내기 학부모가 될 때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변화와 적응의 과정을 격는다. 직장에서 승진을 해도 새로운 지위에 적응해야 하고 심지어 부러움의 대상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선수들도 극한의 적응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 알몸으로 태어난 순간이 가장 혹독한 적응의 시작이었을 거다.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 고등학생을 지나는 필수코스의 적응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대학생이 되고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도 끊임없는 변화가 오고 ‘적응’이라는 과제는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적응에는 ‘동화’와 ‘조절’이 있다. 동화는 내가 새로운 상황에 맞추는 것이고 조절은 상황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개의 적응은 새로운 환경에 맞춰나가면서 시작이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환경에 맞춰 나가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그 상황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끊임없이 새로 만난 환경에 맞추고 조절해 나가는 애씀이 우리의 인생이다.
피해갈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 대목이다. 한 가지 안심되는 사실은 우리에게 ‘적응’이란 유전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차이가 날지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고 노력이 필요하다. 동화와 조절을 통해, 그리고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일어난다.
8살 조카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새로움’과 ‘변화’는 녀석의 식욕과 유쾌함, 행복감을 일시적으로 저하시켰지만 조만간 훌륭하게 극복하고 조금 더 진화(?)하리라 믿는다. 조만간 적응할 테니….
조현미 <행복심리명상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