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우시장<1>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墨畵)’

 서로 발잔등이 부은 일동무. 옛날에 소와 사람은 그렇게 살았다. 가축 가운데 유일하게 식구 대접을 받았던 소. ‘생구’라 하였다.

 

 ‘비육우’로 요절하지 않고 일소로 해로하던 식구

 소는 식구 중 유일하게 저 혼자 쓰는 집(방)이 있었다. 생일도 지냈다. 정월 첫 번째 소날(丑日)엔 생일이라고 소죽에 콩을 듬뿍 넣어주었다.

 ‘종은 못 믿어도 소는 믿는다’ 하였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소 한 마리가 사람 여덟 몫을 한다고 했다. 소가 집안의 상일꾼이던 시절, 일년 농사는 이른 봄 ‘밭갈소’ 훈련으로 시작됐다. 소 발걸음 지나야 봄땅은 잠을 깼고 소 입김 지나야 콩밭엔 풍년이 들었다. 거름도 곡식도 나무땔감도 소 달구지로 날랐다. 풀을 먹으면 가고, 똥마저 거름으로 땔감으로 쓰이는 생태적 운송수단. 농번기에 소는 엉덩이뼈가 불거지도록 일을 하였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는 속담은 ‘소로 사는 고단함’을 아는 이들을 발딱 일으켜 세우는 말이었다.

 소한테는 진 땅을 깊이 갈아야 하는 논갈이가 그 중 힘든 일이었다.

 “소가 힘이 딸린 것 같으문 뱀 지나가는 것을 잡아서 싸랑부리에 싸서 먹였어요.”

 심영구(55·함평 ‘우리들 목장’)씨는 소를 20마리 키우는 집에서 자랐다. 동무들이 망태 메고 소 꼴 베러 다닐 적에 리어카 끌고 꼴을 베러 다녔다.

 “깔(꼴) 비어갖고 오문 소들이 막 코를 벌룽벌룽해요. 어서 먹고싶다고. 누까(왕겨), 콩대, 고구마 썰어서 먹이고 막걸리도 먹이고 그때 소들은 참 잘 먹었죠.”

 소 뜯기러 갔다가 노느라 정신 팔린 틈에 소가 어디로 가버린 일이 있었다. 울면서 터덜터덜 집에 와 보니 저 먼저 집 찾아돌아와 외양간에서 껌벅껌벅 내다보던 소 눈망울은 그이에게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 소들은 덕석옷도 입고 신도 신었다.

 “그때는 길이 순 비포장인께 맨발로 가문 저도 아프죠. 짚세기 신겨서 장에 데꼬 갔죠.”

 소는 제 고삐를 쥔 사람의 걸음에 보폭을 맞출 줄 알았다. 어린 아들이 몰고 갈 적 걸음과 아버지가 몰고 갈 적 앞서 걷는 소걸음이 달랐다.

 “소가 등치는 커도 겁이 많애요. 그래서 핑경(풍경, 워낭)을 달아주잖아요. 어두운 디서 지 핑경소리(워낭소리) 들음서 무서움 없어라고. 사람 죽어서 저승 갈 때도 핑경 흔듦서 가잖아요. 무서워하지 말고 가라고.”

 워낭소리는 애지중지하는 소를 지키는 데도 긴요했다. 소는 논밭 다음가는 재산이었다. 소는 현금이나 다름없었다. 소를 팔아 자식들 혼인을 시키고 소를 팔아 부모 초상을 치렀다.

 해마다 2월 무렵엔 홍수출하되는 소들로 소값이 떨어졌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식구 같은 일소를 내다 팔았다. 농우(農牛)가 아니라 학우(學牛)라 하였고, 대학을 상징하는 상아탑은 우골(牛骨)탑이라 했다. 암소 한 마리가 쓰러져가는 집안도 일으켜 세운다 했던 시절, 일 년이면 송아지 한 마리씩을 낳아주던 소는 식구들과 해로하였다.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의 나이는 40살이었다.

 심영구씨한테도 식구 같은 소가 있다.

 “열다섯 살이에요. 2001년 9월16일 영암에서 5개월 된 송아지를 샀어요. 회사 다님서 명퇴를 시킨께 소 키와야겄다 생각한 거죠. 그때부터 이 소가 나만 따라댕개요.”

 처음 만난 소라고 이름은 ‘첫순이’. 새끼를 여섯 배 낳아주어서 번식을 한 것이 지금 150마리가 됐다.

 “인자 새끼 그만 낳게 하고 먹고 살다 죽으문 묻어줄 거예요. 소가 30년은 산다고 해요.”

 예전 소들은 늙어서 죽었다. 자기 먹을 것을 농사짓는 유일한 동물 소. 소는 이제 더 이상 일꾼이 아니다. ‘비육우’로 요절하지 않고 일소로 살던 시절, 천하지대본인 ‘농자(農者)’로 살아간 소의 하루하루는 장엄하였다.

 <온종일 지구를 끌다가/ 저물녘/ 지평선에 누워 비로소/ 안식에 든 산맥.// 하루의 노역을 마치고/ 평화롭게/ 짚 바닥에 쓰러져 홀로 되새김질하는/ 소 잔등의/ 처연하게 부드러운 능선이여.>(오세영, ‘일몰’).

 

 못 팔아도 서운, 팔아도 서운한 소시장

 아직 어둑 새벽, 7시부터 시작되는 경매에 맞추어 서너 시 무렵부터 소를 실은 트럭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때마다 소를 끌어내리는 힘겨루기와 실랑이가 한바탕 펼쳐진다. 소도 버팅기며 사력을 다하지만 그 소를 끌어내리는 사람도 온힘을 다하기는 마찬가지.

 정종현(34·함평축협 직원)씨는 “상하차는 항상 힘들죠”라고 말한다. “사고 위험이 있으니까 항상 긴장하고 조심할 수밖에요. 특히 축산농가 어르신들이 연로하시고 귀가 어두운 분들도 많으니깐 다치시지 않도록 신경써야 돼요.”

 “송아지는 3대가 끌려간다”는 말이 있단다.

 “어른소보다 힘든 게 송아지예요. 언젠가 선배가 송아지에 끌려가길래 저도 뛰어가서 잡았는데 같이 끌려가더라고요. 송아지가 더 억세요. 저항하는 투지가 엄청나요. 아직 어리니까 무서운 게 없나봐요.”

 소 울음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뒤늦게 도착한 차에서 소가 내달리는 통에 와락 시끄러운 소란. 2?7일 장이 서는 함평 우시장이다. ‘함평 큰소장이 전남 소 값을 좌우한다’고 했을 정도로 이름이 났던 쇠전.

 “전에는 700두가 사고 팔렸어…. 새복부터 오전 내내 장이 섰어. 한 마리 끌고 나가믄 또 다른 소 매 놓고.”

 팔고 사는 거래량은 줄었으나 ‘함평천지한우’라는 브랜드가 있고 전국 최초 한우산업특구로 지정돼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도 믿고 사러 오는 장이란다.

 임희구(55) 함평축협 조합장은 “2013년부터 전자경매를 하고 있다. 평가사가 최저가를 매기고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입찰에 참여하고 최고가로 낙찰하는 시스템이다.

 귓속말 거래가 없어지고 투명한 거래가 이뤄지면서 불신이 사라지고 소들이 더욱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송아지장이 함께 서는 7일(7, 17, 27일)장에는 300~350마리씩이 나온다. 함평우시장은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양자에게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고 있다.”

 지금이야 소가 트럭을 타고 오지만 예전에는 꼭두새벽부터 주인 따라 수십 리를 걸어와 쇠장 말뚝에 고삐가 묶였다. 70줄의 이행복씨는 열아홉 살부터 소장사를 했다.

 “야운 소를 사다가 키워서 내는 것을 마구장사라 했어. 마굿간에서 살 찌워갖고 판다고. 그때는 차도 없은께 여그서 영광까지도 걸어댕겼어. 광주 송정리까지도 걸어댕기고. 소는 해만 떨어지문 무섬을 많이 타. 밤길 댕길라문 발태죽 소리도 안나게 걸어. 괴삐(고삐)를 탁 틀어잡고 오문 가만가만 잘 따라와. 그라고 순해. 오다가 주막집 만나문 술 한잔 하고. 그 시절에는 그 시절의 재미가 있었제.”

 심영구(55)씨는 초등학교 다닐 적에 처음 함평장에 소를 끌고 왔다.

 “55리를 걸어왔어요. 아부지랑 소 세 마리씩을 데꼬 와요. 소를 팔문 붕어빵도 사주고 버스 타고 간디 소가 안 팔리문 끄꼬 가야 해요. 긍께 가다가 괜히 한번씩 소를 뚜들기게 되죠.”

 못 팔아도 서운하고, 팔아도 서운한 소시장.

 “시방은 차에 실어불문 끝나. 그때는 송아지를 폴라문 어미소랑 같이 와. 캄캄밤중에 질을 나서서 두 시간 세 시간을 끄집고 와. 송아지 폴고 애미만 데꼬 갈라문 애미가 울어. 목쉬게 울어. 집에 와서도 밥도 안 묵고 새끼를 찾아.”

 소울음에 밥술도 제대로 뜨지 못했더라는 쇠전 할배들. 소몰이꾼 대신 트럭에 싣고 오면서부터 소시장의 풍경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소도 고생 안하고 무게 감량이 덜해서 좋제만 차 타고 큰 우시장으로만 몰리다 본께 작은 쇠전들은 다 없어져불었제.”

 함평우시장의 구역은 ‘비육우·암송아지’ ‘번식우(임신우)’ ‘숫송아지’ 등 세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송아지전은 2일장엔 서지 않고 7일장에만 열린다).

 오늘은 비육우가 90여 마리, 번식우가 60여 마리 나왔다.

 “비육우는 도축장 갈 놈들, 번식우는 새끼 밴 암소, 믹일 소여.”

 비육소전의 거래 단위는 1㎏당 단가. 경매가 끝나면 소를 우형기(계근대)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무게대로 값을 매긴다.

 번식우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임신우의 임신 개월 수를 감정하는 수의사 장인성씨다. 어깨까지 올라오는 긴 비닐봉지를 끼고 암소 자궁으로 깊이 손을 집어넣는다.

 “뱃속까지 (손을) 집어넣어 갖고 새끼의 머리 크기를 만져보믄 몇 개월인지 짐작할 수 있죠.”

 ‘(임신)O개월’ ‘만삭’ ‘공태(임신 안함, 또는 3개월 이하)’ 등으로 감정사가 기록하고, ‘OOO만원’이라고 평가사가 최저가를 매긴 팻말을 보고 전자응찰로 최고가를 적은 사람에게 공개낙찰된다. 2차까지 전자응찰을 하고 3차는 손 들어서 호가경매를 한다. 비육우는 1kg당 백 원 단위로, 임신우는

 10만원 단위로 내려가는 경매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기자/사진=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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