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디자인·그들이 사는 마을
“피폐해진 삶, 혼자 책임 아니다
이웃 의지하며 함께 풀어 나가야”

한동안 멈추자고 여기저기서 부르짖던 것이 생각난다. 속도감에 휘청거리는 정신을 다잡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을 터이고 도대체 지금의 달리기가 뭘 하는 건지 알고나 뛰자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제발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지 않았을까. 멈추어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삶의 태도는 바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저 살아내자는 목소리만 남았다. 결국은 삶이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사실 삶은 살아내는 것 이상의 생명력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연명하기 급급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싶다.
지난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하도 여기저기서 많은 의견과 논평을 쏟아내니 더 보탤 것은 없지만, 결국 ‘살아내기 급급하게’ 만들어 낸 책임자들에 대한 시민의식이 드러난 것이리라. 누구의 말처럼 사람은 ‘먹고 사는 것만으로’ 살아지는 존재는 아니다. 관계와 소통이 중요하고 서로 돕고 어우러져서 살아가며 느끼는 충만감이 필요하다. 존중받고 사랑하는 감수성 가득한 사회를 기대하는 것이고 그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을’, ‘공동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많이 회자되고 있다.
“온전함은 다른 사람과 연결된 느낌, 우리가 사는 장소에 속해있는 느낌이며 공동체에서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무의식적 자각이다. 따라서 개인의 온전함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라는 두가지 잣대로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가늠한다.”(101쪽, ‘치유,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 중. 그들이 사는 마을)
우리사회에서도 공동체는 이미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대부분의 지원사업들이 ‘OO공동체만들기사업’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과연 ‘마을은, 공동체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교토 조형예술대학교수인 야마자키 료는 사람과 공동체에 디자인의 관심을 돌려 ‘커뮤니티 디자인’에 힘쏟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시도했던 사례를 소개한 책 ‘커뮤니티 디자인’은 마을과 공동체를 일구어 가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면 공공장소를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 관심은 공공공간을 특별히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었다…(중략)…도로 화단을 자기 나름대로 관리하고 그 빈 공간에 차조기와 파를 심는 아주머니 등 공공공간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이 마을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공공장소 디자인도 ‘있거나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차츰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94쪽. ‘마을은 사용되고 있다’ 중. 커뮤니티 디자인)
그는 ‘사람을 보는 디자인’,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을 이야기 하면서 상황은 아직 호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태도로 마을로 성큼 들어가면 이미 그 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이 드러나고 풀려나간다는 그의 확신은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야마자키 료는 자본으로 피폐해진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혼자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이웃과 의지하며 함께 풀어 나가는 삶의 태도를 디자인하고 있는 것이다.”(22쪽 추천사 중. 커뮤니티 디자인)
사람이 모여 살면서 일궈가는 모든 것에 꽃이 피듯 아름다운 것이 맺히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4월이 되고 세월호 2주기를 지나보내며 광산구에 사는 많이 이들이 모여 ‘광산촛불문화제’를 열었는데,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 보인다’는 외침을 함께 하며 더욱 그런 바람이 들었다. 그렇다. 생명을 가진 것은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땅 속의 씨앗이 결국은 꽃으로 열매로 다시 맺혀지는 것이다. 나를, 마을을 우리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일궈가다보면 그 존재의 한 가운데 있는 귀한 생명의 힘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두 알 수 있으리라. 다시 마을이다.
문의 전화: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 ‘그들이 사는 마을’(소콧 새비지 엮음. 느린걸음:2015)
* ‘커뮤니티 디자인’(야마자키 료 지음. 안그라픽스:2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