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 위한 사내들의 헌신

곽재용 감독의 신작인 ‘시간이탈자’도 ‘타임 슬립’을 활용하고 있는 영화다. 1983년의 남자 지환(조정석)과 2015년의 남자 건우(이진욱)는 ‘꿈’을 통해 서로의 눈으로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연인인 윤정(임수정)의 죽음은 물론 연쇄 살인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환을 만나게 되고, 현재의 환생녀인 소은(임수정)에게 닥치는 위험을 막기 위해 바삐 서두르는 건우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탈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사내들이 죽도록 헌신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이 감동받기를 염원하는 영화인 것이다.
‘타임 슬립’을 이용하고 있는 것 말고도 ‘시간 이탈자’는 추적스릴러라는 장르의 관습을 영화 속에 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살인자가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르고 이를 추적하며 막아내고자 하는 것이 영화의 동력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관건은 과거와 현재를 얼마나 잘 이어붙이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범인이 연쇄살인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피해자들이 희생당해야 하는 동기와 개연성이 떨어진다. 여기에다 범인의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못하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도 장르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지 못한다.
이는 결국 ‘시간이탈자’가 추적스릴러라는 장르의 관습을 강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그럴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끌어온 이상 스릴러적인 요소에 공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곽재용 감독이 자신의 전매특허인 ‘시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색다르게 보여주고자 추적스릴러라는 장르를 이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떨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1983년의 지환과 윤정 그리고 2015년의 건우와 소은이 펼치는 사랑의 우여곡절을 107분의 상영시간에 녹여내기도 벅찰 법한데, 1983년의 승범(이민호)과 2015년의 강 반장(정진영)이 살인범과 얽히는 등,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 것도 강박적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 영화는 숨가쁜 편집을 통해 다량의 내용을 전하고자 극을 급하게 진행시키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이유로 곽재용 감독이 필름의 룩(look)을 차별화하며 시대를 구분하고 있거나, 세트와 소품 혹은 인물들의 의상 등에 신경 쓰며 되살려낸, 1983년의 공기역시 충분히 음미할 시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탈자’는, 곽재용 감독의 도전적인 시도가 퇴색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스릴러의 장르적 요소와 ‘타임 슬립’이라는 장치를 편리한 용도로 끌어왔을 뿐, 이를 잘 녹여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곽재용 감독은 어떻게 찍어도 자신의 일관된 주제의식인 사랑의 힘을 믿는 순애보인 감수성을 관철시킨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대영<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