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협력 ‘실험’이 시작된다

심리상담에 대한 일을 이십여 년 해오면서 심리상담과 관련된 사회적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심리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이십년 전만해도 교수님과 선배들은 한국에선 돈을 받는 유료상담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선배나 동기 어느 누구도 선뜻 사회에 나가 사설상담소 개소를 꺼렸다. 그 당시에는 상담과 관련된 수요가 많지 않았기에 심리상담을 하려는 학생들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심리상담과 관련된 진학도 취업도 모두 저조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흐름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바뀌었다. IMF 이후 증가한 심리적 문제 증가도 하나의 원인이었겠지만, 교육부의 전문상담교사제도의 활성화가 한 몫을 했다. 일선 초·중·고등학교에 상담교사가 배치된다고 하면서 많은 사립대학들이 상담학과를 만들기 시작했고,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는 전문상담기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시작해서,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센터, 가족폭력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센터, 성폭력에 대한 상담을 위한 해바라기센터,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독상담센터,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등이 신설되었다.
▲soft… soft counseling의 시대
이러한 공적기관의 성장과 더불어 사설유료상담소의 증가세도 이어졌다. 최근 사설상담소의 증가는 전국적인 추세인데, 특히 대학에 상담학과가 많은 광주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사설상담소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러한 사설상담소 증가는 한편으로는 수요자의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효과적인 선택을 어렵게 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이 상담소 개설을 허가제로 하고, 보험을 적용하는 것에 반해서, 한국은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거의 방임 수준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상담소 개설은 신고제로, 상담과 관련된 어떤 훈련이나 경력이 없어도 가능하게 돼있고, 보험적용 또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상담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들은 어떤 상담소를 가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학원을 나와도 상담소를 개설하기 망설였는데 요즘은 대학만 졸업해도 상담소를 개설하거나, 상담전공이 아닌 사람이 단기간의 교육과정만 이수하고도 상담소를 개소하기도 한다.
심리상담영역에서 또 하나의 변화는 기법의 다양성이다. 이전에는 대화를 통한 일반적인 심리상담이 대세였다면,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드라마치료, 독서치료, 문학치료, 철학치료 등 다양한 치료이론과 기법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모든 학문과 매체가 가지고 있는 치료적 요소를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최면치료나 도형치료처럼 아직까지 학문적 토대가 미흡한데 일부 방송에서 자주 다뤄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심리상담의 흐름에서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비상담자들의 상담영역으로의 진입이다. 이를 semi counseling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제안해 보건데 soft counseling이라 할 수 있겠다. 심리상담관련 앱(App)을 개발한다거나, ‘언니네 상담소’처럼 인터넷에서 자조적 성격의 고민 상담을 해준다거나, 앱툰 ‘단지’처럼 만화 등으로 심리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등의 활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회 변화 속 불가피한 공존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관심과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전공자라는 것이다. 비전공자들이 상담관련 영역을 확장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전공자들은 아마도 영원히 그러한 일을 하기 어렵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대학에서 심리학 혹은 심리상담은 과학이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전공자들은 객관적 증거에 기반하여 치료기법을 적용해야하며, 완벽은 아니지만 완벽에 가까운 효과가 나타나야 자신의 역할을 했다고 당당해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고 느낀다. 반면에 비전공자들은 과학, 효과, 윤리성 등에 대한 틀에 제약을 덜 받기에 새로운 시도를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에 어떻게든 받아들여야만 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전공자와 비전공자 간에 상호 협력적 관계가 될 수가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이다.
앞으로 전공자들은 그러한 노력에 조금 더 개방적이면서, 협력적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며, 비전공자들은 심리상담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 심리상담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회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고통과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 새로운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