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인듯 일상 아닌 시도가 주는 설렘
무등산 곳곳에 배어있는 호남의 이야기

매미소리 대신 옆 상가의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더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그래도 여름이 되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처럼, 세월은 복잡다난한 우리 인생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벌써 6월이다. 곧 다가올 여름은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치유가 되는 계절, 불에 데일 듯 뜨겁지만 집안에만 있을 수 없는 계절. 아마 한 해의 절반 가까이 사느라 지친 마음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스멀거리기 시작하는 요즘, 그렇게 고단한 몸과 마음을 새로운 여행길에서 위로받아보시라는 의미에서 휴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길을 안내해 줄 책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 시작하는 여행스케치’ (오은정·안그라픽스 : 2014)
흔히 ‘여행’은 늘 그렇듯,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 많이 보고 듣고 먹고 그리곤 피곤해 져서 돌아온다. 그리고는 결국 ‘집이 제일 편하지’하면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을 또 힘겹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진정한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오은정의 책 ‘지금 시작하는 여행스케치’는 ‘여행가서 이렇게 그리면 멋진 작품이 되요’ 라고 말하는 미술책은 아니다. 물론 다양한 그리기 방법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팁들이 가득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여행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주고 진짜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
바빠서 여행을 갈 수 없을 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드로잉북 한 권 들고 공항이나 터미널을 가보기 바란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로 여행을 다녀온 것 마냥 마음이 무언가로 그득하니 채워져 있을 것이다. (59쪽)
여행은 그저 낯선 어떤 유명한 곳을 관광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은 낯선 곳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익숙한 면에 안도하기도 하면서 그 의미를 찾는다. 저자는 설레는 여행이 되기 위한 비법 몇 가지를 소개하는데 (국내여행의 경우) 그 지역 짜장면 집 가기, 편의점에서 맥주마시기, 전통시장 가기 등 일상의 경험을 다른 지역에서 해 보라고 한다. 얼핏 별스럽지 않은 것을 왜 여행가서도 하나 싶지만, 일상인 듯 일상 아닌 시도가 주는 설렘만으로도 마음을 흔들어 상쾌한 바람이 지나가게 하기엔 충분하지 싶다. 그리고 거기에 무엇인가 ‘그리라’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꽤나 멋스러운 그림 한 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여행은 분명히 삶에 설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더 보태고 싶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날로그의 진수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길 위에서 그림이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해 보고 싶다면
여행하다가 만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단 하나뿐인 선물을 주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시간도 돈도 없어서 자꾸 미루기만 했다면…(추천글 중)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송갑석· 심미안: 2016)
무등산 역사길은 충장사에서 시작해 취가정에 닿아 멈춘다…(중략) 총 길이는 6km다. 충장사에서 나와 귀후재로 통하는 오솔길이 길의 시작이고 표지판도 서 있다. 김윤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음이 조급하지 않아 기분이 들뜬다. 고향 뒷산 아담한 숲 속을 걷는 것처럼 편안하다. 함께 답사에 나선 사람들은 그 길에서 재잘재잘 말을 섞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금방 친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아마도 길의 힘일 것이다. (118쪽)
무등산은 여느 산과 달리 도심을 가까이 두고 있다.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산이다. 그러면서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솟아있는 풍채가 단단하고 위엄 있다. 다 알고 있는 동네길 같으면서도 늘 설레이는 곳이다. 그 길 곳곳에 호남의 이야기와 정신이 배어 있음을 정리한 이 책은 여행이라고 하기엔 다소 장황한 역사이야기가 채워져 있긴 하다. 무등산 옛길이나 광주유적지 소개처럼 매끄럽게 정보가 소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 책처럼 쉬운 말로 씌여져 있고 긴 역사의 과정을 하나의 맥으로 볼 수 있게 해주니, 오가며 별로 들여다 보지 않았던 비석의 문구며 오래된 나무의 모양을 눈 여겨 보게 된다. 충장로나 금남로라고 불리운 사연을 떠올리며 도심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함께 걷는 이들과 걷고 있는 그 길들,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곳곳에 묻어있는 이야기의 기운이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줄 것 같다.
여름으로 접어 드는 요즘, 여행을 떠올리며 좀 설레여봐도 좋겠다. 꼭 올 여름 실현하지 못해도 궁리해 봤으면 좋겠다. 나에게 우리에게 좀 더 숨쉴 수 있도록 설레임 가득 바람을 불어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 여행을 꿈꾸며 보면 좋은 책들
1. 세계를 읽다 시리즈 : 핀란드 / 이탈리아 / 호주 / 프랑스 / 터키
2.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승효상· 컬쳐그라퍼 : 2012)
3. 바다맛 기행 (김 준· 자연과생태 : 2013)
4. 사계절 전라도 (최상희·북노마드 : 2011)
5. 영산강 350, 그 길을 걷다 (전라도닷컴 편집부·전라도닷컴 : 2012)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