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못한 얘들이 서울대 갔어요. 억울해요”

상담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이 삼수생인데 화를 못 참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괴성을 지른다고 합니다. 시험 스트레스 때문이니 금방 지나가나 했는데 더 심해져서 벽을 손으로 치는 등 폭력적으로 변해 상담을 받으러 온 겁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아서 인근 지역에서 유명한 아이였습니다. 모두들 그 아이는 당연히 서울대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고3 때는 지원 학과의 경쟁이 너무 심해서 떨어졌고 재수 때는 수능 시험이 너무 쉽게 나왔는데 한 문제 실수하는 바람에 못 갔습니다.
이 학생이 상담 때 한 말입니다.
“억울해요. 저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다 서울대 갔어요. 제가 실력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화 나고 짜증나요. 공부도 안돼요. 올해도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요. 실력이 안되는 거라면 인정하죠. 운 좋은 놈은 들어가고 운 나쁘면 떨어지고. 이젠 겁나요. 그러니 화가 나요. 다 때려 부수고 싶어요.”
그 엄마가 펑펑 울면서 한 말입니다.
“내가 우리 아들 때문에 이렇게 마음 고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어려서부터 한 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저도 아들 때문에 누구 엄마라고 하면 다 알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우리 아이가 병이 드는 게 아닌지 겁이나요.”
공부 잘하는 아들이 이렇게 병들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 번 좋다고 평생 좋을 수 없고 지금 나쁘다고 영원히 나쁘지 않습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칠십 프로고 실력은 삼십 프로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해프닝’, 즉 우연성으로 결정됩니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은 모두 해프닝입니다. 내가 이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도, 남자로 태어난 것도 우연입니다. 결혼도, 죽음도 따지고 보면 우연입니다. 논리적,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세상 같지만 사실은 해프닝의 뒤치다꺼리에 불과합니다.
분노와 불안에 휩싸인 이 친구에게 운칠기삼을 받아들이라고 해봤자 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심리극 하는 방으로 데려가서 신문지로 만든 방망이를 주고 벽을 마음껏 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에 있는 분노를 있는대로 표현하게 했습니다. 그 친구는 벽을 쉬지 않고 두들기면서 소리소리 쳤습니다. 어느 정도 분노가 가라앉은 것 같아 그 다음엔 한심한 자기 자신을 두들겨 패라고 했습니다.
“○○!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나약하고! 남 탓이나 하고! 이 병신아! 이 바보야!”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자신을 두들겨 패다가 마지막에는 엉엉 울었습니다. 입시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무척 힘들었겠지요. 거의 한 시간 이상을 미친 듯이 두들겨 패더니 홀가분한 표정으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런 나를 못 받아들였어요. 억울했어요. 왜 세상은 실력대로 안 되는지…이제 알았어요. 운도 실력이라는 걸요. 시험 문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문제가 나한테 불리하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요. 그게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표출된 거 같아요. 이제 편해졌어요.”
전교 수석한 친구라 똑똑한 건가. 신문지 방망이로 벽을 마음껏 치게 한 것뿐이 없는데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다음에 그 친구나 엄마는 다시 병원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서울대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네요. 혹 못 갔더라도 스스로 실패자로 낙인찍고 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운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니까요.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사이코 드라마 수련감독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