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관계의 어려움

사람 인(人)자는 두 개의 획이 서로 기대고 있는 글자다. 사람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라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관계 맺고 살기는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서로 자라온 환경과 처해있는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가 부딪힘을 반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들’ 속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 ‘우리들’은 4학년 3반 친구들을 통해 인간 누구나가 맞닥뜨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의 어려움에 천착한다.
영화는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얼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선(최수인)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본다. 이때 관객들은 얼굴 클로즈업 밖의 사운드를 통해 이곳이 학교운동장이고 학생들이 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 팀의 대표가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이긴 사람이 한 명씩을 뽑아 팀을 나누고 있다. 가위 바위 보는 계속되고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는데, 선이의 이름은 좀처럼 불려 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밝았던 선이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연출을 통해 관객들은 선이가 반에서 인기가 없는 아이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 선이는 4학년 3반 학우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이에게 한 명의 친구가 생긴다. 전학생 지아(설혜인)가 바로 그다. 두 사람은 여름방학 내내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같은 반 여자애들 사이에서 권력서열이 가장 위쪽에 있는 보라(이서연)의 정치(政治)가 지아를 포섭한 결과다. 선이는 모처럼 생긴 친구에게 온갖 정성과 열정을 다 받쳤건만 다시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의 정치가 지아를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보라의 정치는 이제 선이와 지아를 이간질시키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인물은 상대의 약점들을 폭로하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따돌림을 받고 있는 똑같은 처지의 두 인물이, 서로의 치부를 까발리는 파국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못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치졸함이다.
이와 함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상처 주는 말들의 풍경이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물리적인 폭력의 행사보다는 말로써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특징이 있다. 이 영화 속의 선이와 지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선이와 지아의 말은 어느 순간 흉기가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안기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의미심장한 마지막 시퀀스를 준비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고 있는 모습은 도입부와 똑같다. 한데 도입부에서 선이 혼자 프레임을 채우고 있었다면,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선이와 지아를 프레임 안에 함께 세운다. 그러니까 윤가은 감독은 두 명의 인간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며, 관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선이와 지아가 거리를 두고 서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윤가은 감독의 연출력은 대단하다. 어린 연기자들에게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내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시켜낸 것도 그렇고, 손뜨개로 만든 팔찌나 봉숭아, 메니큐어 등 소소한 소품들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진전시켜내는 솜씨도 보통을 넘는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해 ‘인간’을 증명해 냄으로써,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인간 보편의 관심사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은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이자, 이로 인해 파생되는 인간의 온갖 감정에 대한 연구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