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책방 숨은 도서관과 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하는 그림책 외에도 다양한 책들이 있고 부모(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 모습에서 알게 된 중요한 점은 읽어주는 어른도 그 그림책이 재미있을 때 훨씬 생동감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으며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느끼고 같은 생각과 감동을 공유했다는 경험을 가지는 것-의무가 아니라 함께 즐기며 책을 읽는 모습은 바라보는 이도 기분 좋아지게 된다.
그림책은 흔히 아이들 그것도 어린 유아들이나 보는 책으로 여겨지기 일쑤이다.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게 되면 마치 ‘그림책 따위는 떼야’ 하는 수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림책만큼 예술성과 상징성, 그리고 다양한 가치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상상하게 하는 창의성까지 갖춘 콘텐츠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 이야기이고 예술작품이고 놀이이며 추억이 된다. 대부분 아름답고 귀한 가치를 담고 있어 오롯이 마음으로 들어와 나와 이웃, 자연과 사회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갖게 하는 참 좋은 도구가 된다. 흔히 어릴 때 배웠으나 그대로 살면 바보 취급을 받는 ‘현실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서로 돕고 사는 따뜻한 이야기는 ‘환타지이고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건 사리분별 잘하고 손해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똑똑한 처세라기 보단 앎과 삶이 분리되어 살아가게 만드는, 마음이 없는 인간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면으로라도 그림책(동화)을 계속 접하는 것은 삭막하고 단절된 세상에 맑은 물줄기가 흐르게 하는 일이다.
얼마 전 만난 그림책-일본의 대 문호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 그림을 덧붙여 만들 아름답고 따스한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미야자와 겐지 시, 야마무라 코지 그림, 엄혜숙 옮김·그림책공작소)
‘아무도 지나가지 마’(이자벨 미뇨스 마르티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민찬기 역·그림책공작소)
‘장갑’(에우게니 M·라초프 저·한림출판사)
‘그림책에 흔들리다’ (김미자· 낮은산)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