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신건강보건체계에 대한 의문

▲ 지난 5월24일 강남역 인근의 건물 공용화장실 `여성살인사건’ 피의자 김모 씨가 살인사건 현장 검증을 하기 위해 24일 오전 범행현장에 들어서고 있다.<사진=오마이뉴스 ⓒ최윤석>

 올해 5월17일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칼럼을 이번을 포함해서 세 차례 게재하게 되었다. 매월 1회씩 칼럼을 쓰다보니 총 3개월에 걸쳐 게재하게 되었다. 이처럼 3개월에 걸쳐 기재하다보니 우리사회가 지닌 망각과 대책의 부재가 더욱 실감된다. 사건 이후 약 4개월이 흐르면서 이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국가에서 세운 몇 개의 대책이 있기는 하지만 실현불가능해 보이거나,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과연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학습이 가능한 사회인가 의심이 든다.

 첫 칼럼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을 범죄적 측면에서 ‘혐오범죄’나 ‘묻지마 범죄’가 아닌 ‘증오범죄’라고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었고(실제로 한겨레신문과 같은 지면에서는 최근 ‘증오범죄’로 명명하고 있다), 둘째는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 과도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이후 최근에 일어난 일련은 사건들에 대한 불안경험이 축적되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민감함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시민들과 여성들의 반응에 대해 비난할 것이 아니라,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해 반성해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범인 김모 씨가 진정 정신분열증인가?

 이번은 그 마지막 회로 한국의 정신건강보건체계가 적절히 작동했는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대표적 대안을 제시한 첫 주자는 보건복지부가 아닌 경찰청이었다. 경찰청은 사건이 발생(5월17일)하고 일주일 후(5월23일) “정신질환 등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를 경찰이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 측은 강제입원을 행정입원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대체했지만) 이에 대해 일반시민, 정신장애인 단체 그리고 정신건강관련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인권침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경찰청이 이와 같은 발표를 보건복지부 등 타 기관과 논의도 없이 성급히 발표한 것은 국민들의 불안을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고자 하는 성급한 결정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은 경찰청의 즉흥적인 발표는 정신질환을 가진 자를 입원시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와 같은 제한된 주제로 관심을 제한시켜 버려서 사회적 논의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방해해버렸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사회적, 보건적 맥락은 사실 더욱 복잡하다.

 우선 첫 번째 의심해봐야 할 것은 범인인 김모 씨가 진정 정신분열증인가이다. 그가 벌인 행동으로 그의 병명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범행 후 자기진술과 최근 법정에서 밝힌 진술 등은 분명히 반사회적이고, 비현실적이만 그를 정신장애 진단의 범주 중 하나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이다. 기존의 정신장애진단기준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준 자체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그와 유사한 사람을 정신장애로 포함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행동원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반응성의 차이, 여성·노인 그리고 국가와 사회 등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가치관, 자기개념과 자기가치에 대한 느낌 등의 편차는 정신건강의 평가대상으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살인사건의 범죄자인 김모 씨는 검찰조사에서 재판까지 시종일관 자신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의 가치판단과 행동이 자기 나름대로는 합리적 기준과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망상과 같은 사고의 왜곡, 분노폭발과 같은 감정통제의 불능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6번이나 병원에서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혹시 그에 대해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의사들의 면담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 섣부른 추측이 될 수 있겠지만, 만일 그에게 살인사건을 유발할 만한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적개심 등이 높았다고 단순히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입원과 약물처치를 했다면 그것은 정신건강의학 영역에서 일반적인 진단일 수 있겠지만, 김모 씨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에는 결코 적절한 진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진단과 평가는 필수적이고, 적절한 처치를 위한 선행단계이지만 역설적으로 문제해결에 가장 걸림돌이 된다. 정신건강 및 심리이상에 대한 과학지식이 발달했음에도 사람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어려움들은 분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문제가 생물학적 영향이 큰 것인지, 사회환경이나 발달적 영향이 큰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에 대한 진단은 매우 형식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병원에 갔을 때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진단을 받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이 타당하지 않다면, 그를 통해 다른 정신장애인들이 받는 오해는 억울한 것이 아닐까?

 

입원 방치, 약물 복용 중단이 원인이라고?

 두 번째 의심해봐야 할 것은 그의 살인이 입원시키지 않았거나, 약물복용을 중단해서 생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입원은 대체로 치료적이지 않다. 사회적인 격리가 우선시 되는 처치일 뿐이다. 환자가 입원되어서 더욱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약물치료나 심리치료가 추가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그렇기에 그가 장기적으로 입원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퇴원했다고 해서 범행의 가능성을 높이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로 약물치료의 중단이 그의 범행가능성을 높였을 것처럼 말하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에게 향정신성 약물을 처치하기 위해서 필수적 조건은 정확한 진단이다. 그의 범행의 원인이 여성에 대한 태도, 피해의식,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반응 등의 문제라면 그것이 약물에 의해 교정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 아닐까? 언론에서 사건을 기술할 때 언급하는 “병원에 6번 입원했으나 퇴원하였고, 약물치료를 중단하여”라는 문구는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을 영구히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입원시키고, 약물치료마저 더욱 강력한 약물을 강제적으로 복용시켜야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처럼 느끼게 강력한 암시가 될 수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간접적 암시이며, 입원과 약물치료가 필수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려면 진단, 입원, 약물치료에 대한 의료적 관행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근거하여 제시되어야 한다.

 한국의 정신보건체계는 1995년 정신보건법에 제정되면서 보건복지부 주체로 이루어져왔다. 이번 사건은 정신보건법이 더욱 강력해져야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일시적으로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기존의 정신장애 진단에 포함하기 어려운 대상마저도 정신보건법의 대상에 강제로 포함시키거나, 입원과 약물과 같은 의료적 방법만을 치료적 방법으로 투입함으로서 오히려 사회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을 차단할 위험이 있다. 이빈 일리치는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처방할 권한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정의한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진단의 타당성, 입원과 약물치료의 타당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적극적 역할이 필요함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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