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로 약점을 압도한다

김성수 감독이 돌아왔다.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를 통해 젊은 감각의 영화를 선보였던 바로 그 감독이 복귀한 것이다. 두 편의 영화 이후 김성수 감독은 ‘영어완전정복’(2003)과 ‘감기’(2013) 등을 내놓긴 했지만, 감독의 장기인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이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아수라’는,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영화는, 이야기예술이기도 하지만 시각예술이기도 하다. 이를 참고한다면 ‘아수라’는 이야기보다는 비주얼에 공을 들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플롯을 정교하게 구축하기 보다는 빛과 어둠의 미장센을 강조한 영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수라’는,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헐겁고 극을 추동하는 인물들의 동기가 약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가상도시 안남시의 박성배 시장은 온갖 악행을 지휘하고 저지르는 악의 덩어리가 분명하지만 무엇 때문에 악을 자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곽도원이 연기하는 김차인 검사 역시 출세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가 비리로 점철된 박성배 시장을 무너뜨리겠다는 명분 역시 희미하다. 여기에다 악인으로 변해가는 한도경(정우성)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하던 문선모(주지훈)가 박성배 시장의 악랄한 충견이 되는 이유 역시 설명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이에 비한다면, 정우성이 연기하는 한도경은 그나마 구체성을 띠는 인물이다. 한도경은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박성배 시장의 범죄를 수습해주며 뒷돈을 챙기는 인물인데, 악당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채 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악의 초상을 구현해낸다. 그러니까 한도경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는 김차인과 자신을 의심하는 박성배 사이에서 분열하는 인물이 되어 극을 추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수라’는, 내러티브영화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간신히 확보한 채,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이 되어버린 인물들의 행동을 공들여 전시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대사보다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캐릭터를 강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예컨대 한도경이 빗속에서 차를 질주하며 박성배 시장의 하수인들과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한도경의 극강의 스트레스가 관객들에게 실감나게 전해지고 있고, 한도경이 장례식장의 밥상머리에서 유리컵을 이빨로 깨트린 후 입속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장면 역시 인물의 액션이 캐릭터가 되는 훌륭한 예일 것이다. 또한 박성배 시장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 주변 인물들을 대하는 장면 역시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한 사람으로서의 박성배를 정확하게 지시한다.
이렇게 감독의 ‘액션이 곧 캐릭터’라는 인식은 각각의 인물들의 정서나 심리,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상황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한다.
이와 함께 ‘아수라’가 담보하고 있는 스타일리시한 핏빛 미장센은 상상 그 이상이다. 김성수 감독은 장면 장면을 연출하고 표현해 냄에 있어서 한 장면도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임했고, ‘아수라’가 시각적으로 말하는 영화가 되도록 했다. 이는 결국 개연성이 부족하다 싶은 이야기의 약점을 극복해 낸다.
정리하자면, 김성수 감독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의 영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시각예술로서의 영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고, 결국은 이 영화가 이미지의 힘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던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