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의 기억은 다르다. 영화 ‘오 수정’ 중.

 며칠 전,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 말고 언니가 그런다. ‘나는 소고기 싫어, 할머니가 소고기 밖에 안 드셔서 엄마가 소고기 국만 끓여줬자나’라고. 그러자 나는 ‘아닌데, 그건 할머니만 드셨고, 나는 소고기 좋은데’라고 하자 언니는 다시 ‘아냐, 작은 아빠나 다른 사람들이 올 때마다 다들 소고기만 사와서…’너무 많이 먹었단다.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소고기만 드셨던 것도, 선물로 소고기가 자주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기억은 소고기를 싫어할 만큼 먹었던 기억은 없는데…누가 맞지?

 어렸을 적 기억, 혹은 오래전 함께했던 경험을 나누다 보면 누구나 이렇게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럴 때 ‘누구 말이 맞느냐’로 서로의 기억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핏대를 높이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것을 되살려 생각해내는 것이다.

 

 과거 일은 경험자 따라 다르게 기억

 

 그러니 먼저 과거로 돌아가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누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애매하다. 그래서 대충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 되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은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는 것 때문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사건을 보는 ‘틀’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6형제 중 막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늘 형제들이 입었던 옷을 물려 입은 기억만 있을 수 있고, 다른 형제들은 막내가 늘 엄마 등에 업혀 있던 기억만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서로가 엄마가 ‘너 만’ 더 아꼈다고 회고할 수 있다. 이렇듯 기억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지 못할까? 우리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은 특별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으며, 인상적인 것들만 기억할까. 기억은 의식적인가 무의식 적인가. 기억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시험을 대비한 외우기, 잊어버리면 안 될 비밀번호 같은 것, 중요한 사람의 생일 등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이 촉발돼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혹은 잊고 있던 것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30여 년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 오랜 동안 교류가 없는 친구였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저절로 이름과 그 친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팝업창처럼 떠오른 것처럼. 연락 없이 보낸 시간이 길다보니 ‘알아 볼 수나 있을까’했는데 말이다. 살아오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초등 동창’이라는 것이 방아쇠가 되어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것들을 다시 기억나게 했다.

 

 초기 기억 한 사람 인생관 보여줘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기억 주체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아동기에 경험했던 ‘초기 기억’이 그렇다. 요즘 ‘용기’시리즈로 유명한 아들러는 초기 기억이 한 사람의 생활양식(life style)의 기원과 인생관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준다고 한다. 따라서 기억의 사실 여부 보다 특정한 과거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를 분석하여 그 사람의 양육 경험, 성격, 대인관계, 정서, 문제대처 방식 등 생활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기억은 아동기 때의 경험으로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유사한 다른 기억들이 함께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할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곰방대 담배 냄새와 주머니 속의 주전부리다. 담배를 즐겨 피셨지만 90살까지 살다 가셔서인지 담배 유해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개인의 기호식품쯤으로 여긴다. 또 할머니 심부름을 잘하거나 착하게 굴면 주머니 속에 있는 먹을거리를 척척 꺼내 주셔서인지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고 지내는 것을 좋아 한다. 이렇듯 할머니에 대한 초기기억은 흡연이나 노인에 대한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무엇이 ‘나의 기억’에 남을 것인가는 알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내 머리 속에 있지만 어떤 것이 저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고, 기억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상황이나 자극이 없다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것’만 골라 기억할 수는 더더욱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좋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면, 앞으로 기억하게 될 것은 좋아질 것만은 확실하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