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국정원의 실체…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이에 이명박 정부의 나팔수로 전락한 상태였던 문화방송은 PD 최승호를 해고했고, 최승호는 자신처럼 해고된 언론인들과 모여 ‘뉴스타파’를 만들었다. ‘뉴스타파’는 현재 3만 9000여 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하여 운영 중이다.
그렇게 최승호 PD는, 진실을 갈구하는 응원군들을 등에 업고 용맹정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뉴스타파’는 많은 국민들이 접하는 매체가 아니기에 보도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2012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이 날조된 것임을 폭로한 보도만 해도 그렇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들이 악의적이고 터무니 없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국정원은 꿈쩍하지 않았고, 조중동과 종편은 국정원이 제공한 거짓말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며 진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이에 최승호 PD는 진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체를 달리해야 한다는 사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자백’은 인터넷 뉴스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로 국정원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마음먹은 결과물인 것이다.
‘자백’의 완성을 위해서 1만 7261명이 응원군으로 나서 준 것은 최승호 감독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의식해서 인지 ‘자백’에서 최승호 감독은 스스로를 영화의 지렛대로 삼는다. 그러니까 최승호 감독이 주요 등장인물이 되어 스크린을 활보하고, 인터뷰어는 물론 해설을 도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유행시킨 방법론이기도 한데, 마이클 무어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원맨쇼를 펼치는 반면, 최승호는 되도록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톤을 유지하려 애쓴 점이 눈에 띈다.
‘자백’의 초반부는 서울시의 공무원이었던 유우성 씨가 어쩌다 간첩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근거인지를 차곡차곡 보여주며 국정원의 작태를 고발한다. 이어서 이 다큐멘터리는 유우성 씨가 간첩조작사건의 희생양이었음을 밝혀내는 것을 넘어 간첩조작사건이 박정희 정권 때부터 계속되어오고 있음을 추적한다. 그렇게 감독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국정원(중앙정보부/안기부)이 죄 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짓을 서슴없이 해온 부끄러운 역사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감독은 간첩조작사건의 실세들인 김기춘과 원세훈과의 만남을 시도하며 다큐멘터리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김기춘은 유신 후반기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으로 있으면서 ‘학원 간첩단 침투사건’과 같은 수많은 용공 간첩조작사건을 지휘했던 사람이다. 감독은 이러한 김기춘에게 집요한 질문공세를 펼치는데, 이에 김기춘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쫓겨나가는 모습을 연출한다.
또한, 2009년부터 4년 넘게 국정원장의 자리를 지키며 간첩조작을 진두지휘했던 원세훈과의 만남도 흥미롭다. 원세훈 역시 감독의 집요한 질문공세를 피해 종종걸음을 치는데, 얼굴을 가렸던 우산이 들어 올려 지자 그가 비열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는 어떤 반성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분명 김기춘과 원세훈 등은 부정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간첩죄를 씌웠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던 수많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도 국정원은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울 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자백’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야 한다.
조대영<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