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불공정을 대통령이 거들다니…

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거나 목말을 태우고, 연인 혹은 부부들이 다정히 손을 잡고, 친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두터운 털 코트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점잖아 보이는 노인부터 청소년까지 모든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광화문을 채웠다. 행렬의 시작도 보이지 않았고, 행렬의 끝도 보이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몇 만 명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림으로 계산한 수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 많은 시민, 국민들이 있었다. 큰 물줄기처럼 행렬이 광화문의 거리를 돌아가면, 인도의 시민들은 피켓을 들고 응원을 하거나, 함께 피켓을 높이 쳐들었다.
그들은 ‘박근혜 하야’라는 구호를 외치기는 하였지만, 격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심지어는 축제처럼 즐겁고 편안해보였다. 자신이 만들어 온 위트 넘치는 피켓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특정한 구호가 반짝이도록 패드를 들고 다니기도 하고, 레이저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였다. 시민들은 이미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승전군 같았으며, 자신들의 주권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만족과 자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50세 이상의 분들은 87년 이후 30년이 지나 같은 장소에 서게 된 것에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유라 이화여대 입학’이 주는 절망감
전국 각지에서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습은 동일했다. 왜 다른 날 같았으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야외에 나들이를 갔을 모든 시민들이 여기에 온 것일까? 그들은 무엇에 대해 분노하는 것일까?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건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화여대 입학과 불공정한 학점부여인 듯하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위세를 이용해서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갈취하고, 문체부와 교과부 등 정부기관에 특정 사업에 선정되도록 하는 것도 허락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한 민간인이 국가시스템을 장악하고, 깨부수는 것을 이화여대 사건으로부터 가장 피부 깊숙이 느꼈던 것이다.
국민은 자신의 노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싶어 하고, 그에 대한 대가 또한 공정해야한다고 믿었기에 무한경쟁에, 양극화된 사회에, 패자는 잉여인간이 되어버리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선의와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자신이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초월하여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지위와 부를 향유하는 정유라 앞에서 희망이 헛된 것임을, 거짓임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국민들은 삶이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공정한 사회를 바란다. 한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편법을 쓸지라도 최소한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과 정치인, 공무원은 공정성과 공익성이 지켜지는 시스템을 목숨처럼 지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사명을 스스로 깨부순 대통령을 누가 인정하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시민들의 시위는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거절이며, 잘못에 대해 엄중한 벌을 주겠다는 결심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처벌을 유예할 만큼 작은 것이 아니라, 막중하다는 선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과오가 얼마나 위태롭고 큰 것인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그와 연관된 ‘부역자’들은 이미 목전에 칼끝이 와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고민하는 것은 벌을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는 정치적 묘수와 눈속임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단오함을 담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기회가 권력이 자신들의 손에서 나왔으며, 자신들을 위해 봉사해야한다는 당연한 민주주의 대한 개념을 추상적인 행태가 아니라 몸을 체험하고 체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하야’ 이후를 조심하라
이전에 어떤 대통령들은 카리스마와 정치신념, 도덕성, 업적 등 다양한 인격적 특성으로 인해 신격화되곤 했지만, 이제 국민들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새로운 정치인을 평가할 것이며, 혹 신격화할 만큼 의존하고 싶은 정치인이 나타나더라도 자신들의 호감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아우라를 인정받지 못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이젠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분노에 담겨있는 이상(理想)을 인식하고, 실천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포부를 겸손하고, 그릇되지 않게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대리인을 잘 살펴보는 과제가 주어졌다. 우리 또한 이기적이고, 잘못된 기대, 환상에 의존하여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격을 간과했었다. 이제는 누굴 뽑아도 잘 될 것이라는 어설픈 기대를 가장 조심해야할 때이다. 위기는 가장 좋을 때 오는 것이다. 박근혜 하야가 예상보다 빨리 올지라도, 그때가 국민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무엇을 향해 무엇을 준비해두어야 할지를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