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열린 금남로 촛불집회.
 박근혜 게이트 이후에 촛불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촛불에 매어 있다. 꼭 관련된 뉴스나 소식을 듣지 않더라도 의식의 흐름은 촛불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마치 작은 샛강들이 모여 큰 대하를 만들 듯 늘어나고 있다. 촛불집회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집회이지만 그동안 문명화된 인간, 비인간적인 삶을 감내하던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업을 치유하는 국민들의 집단적 자기치유과정이기도 하다.

 

 ▶관계회복 경험

 자신의 초에 불이 없거나, 촛불이 꺼진 사람들은 곁에 있는 이웃에게 불을 옮겨줄 것을 다정하게 부탁하고, 불을 지니고 있는 사람 또한 친절하게 그 불을 타인에게 옮겨준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다. 이러한 불을 건네주는 행위는 촛불집회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작은 것을 받고, 주면서 이처럼 행복했던 경험을 언제 해보았을까?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우리는 그 언젠가 있었을 감성을 회복하는 느낌을 얻는다.

 집회에는 광주의 모든 시민이 모인다. 어떤 이는 집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있지만, 어떤 이는 중간에 참여했다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에서 우리는 이전에 자신이 형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서 만나게 된다. 회사에서 만났던 고객이 곁에서 함성을 지르고, 소원했던 동창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무서웠던 아버지가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할로서만 관계를 형성했던 견고한 틀이 깨지면서 그들을 개성을 지닌, 따뜻한 피를 가진 고유한 인격체로서 만난게 된다. 지금까지 돈을 매개로, 직업이라는 역할을 매개로, 지위를 매개로 만났던 비인격적인 만남의 도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즉,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나-너’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축제성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은 축제성이다.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아픔을 느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학과에서에서 동창회까지, 그리고 가족 등 다양한 단위들로 집회를 참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정당과 같은 공적 조직은 오히려 촛불집회에서 작은 부분밖에는 차지하지 않는다. 집회에 참여하는 생소한 각자들이 앞서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디선가 ‘박근혜’라는 선창을 부르면, 주변에서 ‘퇴진하라’는 후창으로 답하고, 또다시 좌측에서 선창하면 우측에서 선창하고, 사회자가 선창하면 시민이 후창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호를 합창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자신 있는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집에서 직접 제작한 피켓을 들고 나오기도 하였다. 각각의 피켓에 적혀있는 구호들은 과격한 비판에서, 이성적 제안에서, 웃음을 지어내는 유머까지 집단적 지성의 융화를 보는 듯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시적 형태의 집단과의 일치성, 보다 큰 존재와 융합되는 느낌-융(Jung)이 말한 일종의 심리적 연금술이라 할 수 있는-을 잃어버렸고, 그리스를 비롯한 고대사회에서 있었을 법한 디오니소스적 축제에서 오는 ‘무의식의 해방’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번 촛불집회는 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문명화된 현대사회, 양극화되고 불안하고 외로운 한국사회에서 경험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국민 전체의 치유의 장인 것이다. 치유에서는 항상 마지막이 중요하다. 감정은 다 쏟아져야 하며, 참가자들과 공유되어야 하며, 수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고양된 느낌은 불쾌하고 미 해소된 느낌으로 남아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다음 생으로 태어나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중음(中陰)과 같은 영혼이 될 것이다.

 탄핵 표결을 며칠 뒤로 하고 있는 지금, 어느 누구도 탄핵가능성과 그것이 실패했을 때 나타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정치평론가와 정치인들은 그 결과가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고, 파괴적인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염려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이 가능한 것은 그들 각자가 인류역사와 개별적인 한국사에 참여한 경험을 참고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미 정치인 각자의 가슴에 분노의 감정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부터 국민을 하늘(天)에 비유하곤 했었다. 하늘은 세상을 돌보는 자애로운 덕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통치자가 그에 맞는 덕을 지니고 있지 못할 때는 정의롭고, 단호한 처벌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인간은 자연의 예측과 통제 불가능성을 경험하면서 여전히 인간 존재가 세계 내에서 미미한 존재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대통령의 3차 담화는 머리 좋은 몇 명의 전략가들이 만들어 낸 고도의 정치적 술수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만든 수(手)는 매우 뛰어난 것이지만, 하늘의 지혜 앞에서 그것은 아이들 장난과 같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인 새누리당, 그리고 배후의 전략가들은 국민들의 하늘같은 지혜와 엄명을 가벼이 보지 말고, 두려워하고 지금이라도 국민을 뜻을 즉각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야 국민들 각자가 ‘우리’라는 느낌 속에서, 그리고 국민이 국가를 인격적 차원에서 소중하게 인식하는 자기치유의 혁명이 될 것이다. 이는 현재 마음이 아픈 어떤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닌 공동체 차원의 놀라운 치유혁명이 될 것이다. 그 순간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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