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인가. 세상에 종말이 오며, 진정한 신도들은 휴거를 받아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을 지닌 종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다. 이들은 휴거에 대비하기 위해 일상생활은 접고, 선교활동과 기도를 하며 그 날을 맞이했다. 그러나 정작 휴거가 일어난다는 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이 무너진 상황에 접했을 때 신도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휴거를 주장한 목사를 사기꾼이라고 고소했을까 아니면 모두 그 종교를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결과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휴거가 다음 시기로 연기되었다’는 목사의 거짓말을 믿고 그 종교에 계속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기존 믿음 일관성 위해 정보 합리화
비슷한 상황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하겠다는 대통령을 철썩같이 믿었지만 지금 그 믿음의 행위를 부정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탄액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친박 정치인, 수십 년을 한결같은 표심으로 지지해 주었던 지역민,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라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국민들이 그렇다. 이들의 믿음을 배신한 대통령의 여러 행태가 드러나면서 ‘자신의 믿음’과 배반당한 ‘현실’의 차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분노, 긴장, 불안 등과 같은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현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표를 준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부끄러워하며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고, 누명을 쓴 것’이라 부정하고 ‘대통령 모르게 나쁜 짓을 한 최 씨 일당이 나쁘다’며 남 탓을 하고 ‘누구나 실수는 하고, 대통령도 실수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도 하고, 그리고 ‘그래도 임기가 남았으니 대통령’이라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말도 안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고 할까.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조화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 생각, 행동 등에 반대되는 정보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믿음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온 정보를 자기 합리화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과의 불일치는 스트레스를 주고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감소시키기 위한 심리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부조화를 경험하는 사람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심리적 방법인 것이다.
예를 들면 금연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지키지 못하고 흡연을 했을 때 좌절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고, 이러한 불쾌한 감정을 감소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가끔씩은 피워도 괜찮다’라고 합리화 하거나 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금연할 수 있으니’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담배는 기호 식품이다’라며 금연에 대한 당위성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실수 괴롭더라고 받아들일, 용기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일 뿐이다’라고 한 심리학자가 있다. 그의 주장은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논리로 보여질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합리화’를 잘 해야만 살아남는 세상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받으면 뇌물이고 내가 받으면 정, 남이 하면 범죄고 내가 하면 실수’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탄핵을 바랄 때, ‘누명 탄핵’이라며 탄핵을 반대하는 피켓 들고 나오는 이들을 보며 궁금했다. 그들의 믿음의 시작은 어디이고, 속속 드러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탄핵 반대를 외치는 그들의 심리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그러나 그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 촛불 민심에 떠밀려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꾸며진 거짓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속 믿음을 숨긴 채 실제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철새’정치인이나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인 겉과 속이 다른 ‘샤이 지지층’들이 더 무서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이 틀렸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괴롭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도 성장하고 사회도 성장한다. 누구나 실수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바보…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