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임룩도 욕망, 그들의 파워를 갖고 싶어하는 것”

유행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지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한 해에는 먹방과 쿡방이 유행했고, 팟캐스트와 같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인터넷 방송이 트랜드였으며, ‘꽃길’이나 ‘뭣이 중헌디’와 같은 유행어가 유명세를 탔다. 음식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혼밥’을 즐겨먹는 사람이 늘고 요리 못하는 남자들이 직접 ‘요리’를 하는 경향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상한 유행도 있다. 범죄자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패션이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경우로 이걸 블레임 룩(blame look) 이라고 한다. 나라를 들었다 놨다했던 비선 실세의 딸 정유라가 덴마크 현지에서 체포 된 이후,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정유라 패딩’이였다. 바로 얼마 전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이재용 립밤’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과거 탈옥범 신창원이 검거될 때 입었던 짝퉁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고, 학력위조를 했던 신정아,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정환이 입었던 옷들도 유행을 했다. 문제를 일으킨 사건의 정도가 심하고, 그 파장이 심할수록 더욱 그들의 패션은 이슈가 되었다. 왜 그럴까?
‘욕하면서 따라하는’ 심리는 무엇 때문일까? 어떤 범죄 심리학자는 ‘사회에 불만을 가지거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이들을 동경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심리학자는 ‘다른 유명한 누군가를 통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아바타(분신))심리’ 때문이라고도 한다.
흔히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하듯 어떤 프랑스 학자는 한국을 ‘유행의 나라’라고 했다. 프랑스처럼 개인주의 문화는 자율성, 독립, 자유, 개인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비교적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만족’이 더 중요해서 유행보다는 개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유행에 따라 옷차림, 머리, 먹을거리, 운동, 교육열 등등 많은 것들이 시시각각 변한다. 심지어 성형이나 대통령이 맞았다는 온갖 ‘주사’들까지. 친구나 이웃이 ‘좋다’고 하면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그냥’ 따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회적 규범을 중요시하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다. 서로 의존하고, ‘조화’와 협동이 강조되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자 할 때는 여러 심리적 욕구가 작용한다. 소유하게 될 물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경험 할 수도 있고,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소속의 욕구가 충족될 수도 있다. 또 의식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욕구가 투사되기도 한다.
‘재벌 립밤’으로 유명세를 탔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립밤이나 정유라의 패딩은 ‘젊고 돈 많은 부모’, ‘금수저’들의 일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언가 ‘특별함’을 기대한 부러움이나 선망의 감정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탈주범 신창원의 티셔츠로는 ‘신출귀몰함’을 얻고, 학력위조 했던 신정아의 패션에는 ‘젊은 여성의 매력적인 권력’을 갖고 싶은 투사된 자부심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유행은 내면의 욕망이다. 유명인을 따라하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인기를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하려는 욕구다. 욕하면서 따라하는 블레임 룩도 결국 숨어있는 욕망의 표현이다. 문제적인 사람들을 따라하면서 그들만이 갖고 있는 파워를 갖고 싶은 것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 비록 문제적 인간일지라도 그들의 욕망을 맛보겠다는 우리 모습이 조금 쓸쓸하게 보인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