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을 사귀었던 남자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후배. 헤어지자는 이유가 ‘너무 사랑해서’라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눈물을 쏟았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들리는 ‘그’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는 그가 밉고 화가 나지만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하단다. 후배는 요즘 미친 듯이 화를 내다가 또 자신에게 무언가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책하고 울기를 반복한다.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 단계로
2월은 ‘작별’이 많은 계절이도 하다. 학교를 마치고 졸업함으로써, 학년을 마치고 상위학년으로 진급함으로써, 조직에서는 부서이동이나 승진을 함으로써,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봄’이라는 계절로 바뀜으로써. 이렇듯 어떤 헤어짐은 죽음으로 다시 못볼 곳으로 갈라놓고, 또 어떤 것은 상처나 미련이라는 흔적을 남기기도 하며, 다른 것들은 성장이나 반복의 연속 선상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이별이든 이것들의 공통점은 ‘영원’할 것 같은 관계나 맺음에 대한 ‘착각’을 차갑게 마주 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느낌이 들면서 화와 분노를 경험하고, 헤어짐이라는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면 이를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자책도 하고 슬퍼하며,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하는 이들은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치게 될까.
어떤 심리학자는 애착(사랑 혹은 관계)을 박탈당한 사람은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 감정을 겪는다고 한다. 이별을 통보 받은 후배는 분노와 부정의 단계에 있고, 엄마와의 이별을 앞둔 저자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조금씩 이별을 연습하고 있는 수용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감정들은 이별 할 때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이며,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하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과정이기도 하다. 화나 슬픔·불안의 감정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느끼지 않으려 하고 쉬운 ‘위안’을 찾으며, ‘영원한 것은 없다’며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별을 앞둔 우리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이별의 심리적 과정을 의식적으로 이행하고,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정도일 것이다.
“사랑이 떠나가도,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상실의 아픔에서 회복되는 속도는 개인차가 있다. 예를 들면 연인과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자신의 삶보다 상대를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공허감이나 허탈감에 빠지기 쉽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상대에 더욱 분노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많을수록 ‘본전’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친구나 가족들과도 친밀하게 교류했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아픔으로부터 회복도 빠르다. 또한 이별은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별의 책임은 전적으로 한 사람에 있지 않다는 것, 숨 쉬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운 감정과 남은 미련을 직면하는 것만이 회복에 이르는 길이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라는 유행가 가사가 위안이 된다. 이별을 극복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망각이 아니던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우리는 또 밥만 잘 먹는다는 씁쓸하지만 다행스러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으므로.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