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심코 집어든 한 책이 너무 재미있어 밤새도록 읽은 적이 있는가?
그 많은 페이지의 이야기 속에서 유독 내 마음에 머물러 있는 한 문장이 있는가?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그 한 문장일 뿐이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했던 순간이 있었나?
길 가다가 서점이 눈에 띄면 딱히 책 살 계획은 없어도 들어가고 싶어 맘속에서 한참 실랑이를 한 적이 있는가?
책만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계속 솟아나 고르고 골라 책을 사 왔는데, 집의 책장 어느 칸에서 예전에 사 두었던 같은 책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책과 관련된 이런 질문들에 하나라도 ‘예’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북스테이에 적합한 사람이다. 책에 관한 한 중독자의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오로지 ‘볼만 한 것이나 할 만한 일’이라고는 ‘책’밖에 없는 곳에서의 하룻밤도 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늦가을부터 동네책방 숨은 ‘북스테이 체험’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북(book)사이에 머무는(stay) 것인데, 숨의 여러 공간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둘러싸인 하룻밤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011년부터 지금껏 운영하는 책만세 도서관은 간혹 학교의 독서 동아리 학생들과 선생님이 하룻밤을 묵으며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작은 도서관 관계자들의 워크숍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또는 광주에 강의 차 온 강사님이 묵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요청을 하면 숨지기의 집 손님방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차곡 차곡 쌓여 지금은 북스테이 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잠을 자기엔 꽤 넓구나 싶은 도서관에는 실내텐트를 치기도 하고, 운치 있는 다락방에는 옛스런 목마 한마리가 기다리고 있다. 일반 숙박업소가 아니니 아직까진 우리같이 서점을 운영하거나 책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그건 숨지기에게도 무척 반가운 일이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고충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다보면 공감하는 폭이 어느 누구와는 남다르다. 서점마다 했던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덕담 같은 이야기를 절실하게 주고받으니 꽤 격려가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숨에서 불과 십분거리에 살고 있지만 여행기분을 내겠다며 30년지기 친구와 찾아오기도 한다. 중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작가 지망생이라고 속마음을 살짝 내비치기도 한 그 분은 역시 북스테이 체험담을 너무 멋지게 써 주었다. 책으로 만난 이들은 다른 목적이나 관심사로 만난 이들과는 다르구나 싶을 때가 많다. 물론 숨지기 역시 ‘책’을 생계로 삼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생면부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책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때문이리라.
동네책방 숨에 머무르는 분들에게는 몇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공간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숨의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룻밤 머물 곳으로 안내를 하는데, 이때 그날의 방문객에게 맨 처음 드리는 선물은 시 한편이다. 낡은 그림책의 페이지를 이용해 시 한편 붙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환영카드를 만들어 드린다. 그 싯구 중 하나라도 마음에 울림이 있기를 바라면서. 요란하진 않지만 맛난 아침식사 또한 선물 중 하나다. 특히나 여성들은 누군가가 차려주는 한 끼 식탁이 그리 행복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선물은 잡지 ‘전라도닷컴’을 비롯해 ‘광산구보’나 ‘숨 사진이 들어간 엽서’ 등등 지역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이다. 전라도 광주에 왔으니 이 지역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건네준다. 비용은 들어가지만 어떤 선물보다 뿌듯한 마음으로 전달한다. 숨에서만 줄 수 있는 선물이라서 그렇고, 전라도 문화를 알리기도 하고 우리가 이런 문화시민이야 라는 자부심도 드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북스테이를 시작하면서 사실 고민이 많았다. 우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책’을 매개로 이야기 나누고 삶을 나누고 생활문화가 바뀌어 가고…꿈꾸었던 그런 것이 고리타분한 것이 아닌 일상의 활력이 되는 체험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막상 시작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추억을 만들고 어른들은 영혼을 돌보는” 일이 작은 동네책방 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간다.
문의 062-954-9420
북스테이 신청(www.bookcafesum.com)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북스테이 하며, 편하게 혹은 나홀로 읽기 좋은 책
‘갯강구씨, 오늘은 어디가요?:30일간의 유럽 툰 일기’(최지수 글 그림. 키다리:2016)
:세계여행을 직접 갈 수 없지만, 특별한 공간에서 책으로 떠나는 여행의 맛이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이화경 글, 웅진지식하우스:2015)
:밤과 여성과 이야기, 얼마나 멋진 조합인가! 그녀들과 밤새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하는 책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글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돌베개:2011)
:본문의 글을 읽지 않아도, 간간히 섞여있는 만화와 삽화가 웃을을 유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