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망각’ 기대한 무모한 도박

마감이 내일인데 아직 글 주제조차 정해지지 않다니, 망했군. 어떡하지? 주제는? 이제 슬슬 그만 써야 할 때가 아닐까, 이렇게 밀려서 쓰다니, 4년 째면 오래 쓰긴 했지…아악! 그래도 내일은 원고를 보내야 하는데, 문제는 당장 내일로 닥친 원고지! 대체 2주 동안 무슨 생각으로 지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똥줄이 타고, 심장이 쫄깃해져야 겨우 ‘시작’하는 스스로를 탓하느라 또 밤이 깊어간다.
밀려서 일하지 않기!로 했지만 도대체 생각처럼 부지런(?)해지지 않을 때, 가끔씩 ‘꼼수’를 부리고 싶어진다. 생각해낸 꼼수가 나름 합리적(?)이라 체면을 걸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 ‘글’을 보기나 할까? 4년 전에 쓴 글을 설마 알겠어? 내 글을 내가 복제하는데…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모를 것’이야. 솔직히 잘나가는 신문(?)에 쓰는 글도 아닌데…머릿속에서는 점차 ‘치사한’ 수가 아니라 ‘그럴싸한’ 요령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해도 될 것’만 같다.
시시하고 치사한 수단이나 방법, 여러분들은 어떤 때에 쓰는가“ 아마도 급박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에게 닥칠 손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워 ‘정면(정직)’돌파를 못하고 꼼수를 부리지는 않는가. 요즘 선거를 앞두고 공직을 사퇴하지 않은 채 출마선언을 하는 정치인, 명확한 증거와 주장을 혼동하면서 증거 대신 ‘부인’만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뇌물을 주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기업인들. 필자마저도 순간 부리고 싶었고,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 흔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꼼수가 ‘통’한다(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아웅’하는데 그것이 고양이라고 속아 넘어갔다. 아니 어쩌면 지금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꼼수를 부리든 수를 부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잊기를’ ‘관심 없기를’ ‘이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될 것’이라는 심리가 가장 클 것이다. 게다가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경제적이익까지 본다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면 치사한 수는 ‘신의 한 수’로 업그레이드 되고 만다.
거짓이나 째째한 수가 상황을 모면하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는 것에는 ‘강화의 원리’가 있다. 하면 안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보상’이나 ‘이득’을 보게 되면 그 행동의 정도나 강도가 더 세지게 한다. 게으르고 나태해서 마감이 닥쳐서야 이 궁리 저 궁리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연명해 온 필자도 데드라인이 닥치면 어떻게 되었던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고, 이 행동을 유지해온 강화의 기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분명 ‘잊었을 것’이고 ‘관심 없을 것’이라 여기고 ‘은근 슬쩍’ 이란 맘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처음’ 글을 쓰기로 했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아는 것을 ‘나누고’ 싶었던 초심이 동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 글을 쓰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글을 쓰면서 느꼈던 보람의 순간도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읽고 전화로 감사를 전해주었던 분들이 생각났다. 글을 통해 만났을 뿐인데 전화를 주시고, 즐겨 읽고 있노라고 파이팅을 외쳐주던 독자들. 나의 꼼수를 알아차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우리들에게는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냉정하고 비판적인 관심과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의 ‘무관심’과 ‘망각’을 기대하며 누군가는 은근 슬쩍 ‘꼼수’를 부리려 하기 때문이다. 4월이다. 기억의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노란 세월호가 무사히 땅 위로 올라오기까지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했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필자에게 꼼수는 늘 가까운 곳에서 매우 유혹적이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