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밍보이즈’ 공동체 상영회

▲아시아·유럽서 만난 수많은 농장·공동체
“‘비상식량’이라는 팀 이름은…‘농업기술로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을 담아 하석이 지었다. 그렇게 시작한 비상식량의 농업 세계일주 프로젝트는 세계의 농장들을 돌아다니며 일을 배우고 유기농 농장들과 농업교육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다. 비상식량팀은 2013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 12개국의 농가를 찾아 세계일주를 떠났다. 일본을 시작으로 호주, 태국과 라오스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농가들에서 농부들과 함께 땅 파고 삽질하며 꿈을 찾아 떠난 600일간의 여정이다.”(14쪽)
‘농촌에서 미래를 본’ 한국의 한 청년이, 청년농부가 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다른 나라의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는지, 만나고 확인하고 싶어 떠난 길의 대부분은 고생으로 채워지고 없는 돈으로 늘 노숙하는 듯한 생활이었다. 함께 떠난 이들과도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힘든 과정을 겪는다. 어느 나라 하면 떠오를만한 유명 관광지는 거의 가진 않지만 이 책이 값진 이유는 고민하는 한국의 청년으로서 만난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를 시작으로 아시아를 거쳐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이들은 수많은 농장과 공동체를 만나게 되는데 방문했던 곳곳을 소개한 내용이 매우 알차다. 세계3대공동체인 호주의 ‘크리스털 워터스’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의 ‘그린스쿨’이나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생태교육을 하는 ‘더러닝팜’, 생태공동체디자인 교육을 진행하는 인도의 ‘싯다르타빌리지’, 국가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해 농사를 짓는 이탈리아의 ‘테라베네 카이코치’, 토지공유개념으로 정부에 의존하기 보다는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벨기에의 농장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여러 농장들에서 만난 농부들까지, 대규모 엘리트 농업에 골몰하는 한국의 농업현실에선 꿈꾸기 힘든 다양한 농업공동체를 만나면서 이들이 알게 되는 건, 농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산업의 하나가 아닌 삶을 영위하는 가장 기본활동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우퍼가 한 명 더 왔다. 이름은 폴. 파리에서 건물을 짓는 기술자다. 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 농업에 대한 뚜렷한 동기를 갖고 있었던 반면 폴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고 싶어’ 여행을 떠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유기농업을 배우려는 이유가 뭐냐고? 그거야 당연하잖아. 농사는 인류의 미래니까. 삶의 근간이자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요소니까 농사를 배워서 앞으로 내 삶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거야.” 폴의 대답을 들으며 농업을 비장한 의무감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근간으로 바라보며 경험하고 느껴 보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197쪽)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생각하는 농사
7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80%가 농부였다고 한다. 나라 전체가 급속히 산업화되면서 농업공동체가 가지는 긍정적인 힘-함께 살며 서로 돕는 다양한 가치들은 폄하되었고 농촌은 수탈당했으며 도시를 떠받치는 노예가 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농업 현실을 생각하면, 이 청년들의 시도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산업적인 측면으로 농업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도농공동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업을 더 이상 모른척 해서는 안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땅과 물, 숲과 들판을 잠시 빌리는 것이 농사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땅이 엉망으로 망가질 정도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늘어난 생산량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이나 모든 소비의 기준을 가격으로만 살피는 소비자들까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더불어 사는 일상’인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생각하는 농사, 깊고 넓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이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더욱이 이 넓은 땅을 임대료도 받지 않고 무상으로 빌려주는 결심은 아무리 돈이 많은 자산가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작물의 다양성을 추구해. 하지만 그 많은 작물들을 나 혼자 키워낼 수는 없잖아? 난 손이 두 개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 넓은 땅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이자고 생각한 거야. 나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 사람들은 땅이 필요하니까 서로에게 좋은거지. 우리는 서로가 있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울 수 있어. 그리고 바로 이런 것이 농업에서 중요한 점이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 협력말이야. 우리가 어렸을 때 배웠던 경쟁, 싸움보다 이런 협력을 통해서 더 멀리갈 수 있어.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지. 우리는 자연을 믿어. 자연을 상처 입히지 않고, 맞서 싸우지 않으면 자연은 항상 그대로 있어. 그리고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지.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을 신뢰해야 해.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돌려주지 않고 항상 가져가기만 해. 너무 이기적이야. 항상 돈 뿐이지. 자연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주지 않으면 안돼.” 페이백(Pay Back, 돌려주다). 우리가 얻은 만큼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니 명언이다.” (245쪽)
※함께 보면 좋은 농사에 관해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줄 책
‘농촌의 역습’ 소네하라 히사시 지음, 제갈현 옮김 (쿵푸컬렉티브:2013)
‘10대와 통하는 농사이야기 : 생태적 삶을 일구는 도시농업과 건강한 먹을거리’ 곽선미 외 6명 공저 (철수와영희:2017)
‘온 삶을 먹다’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낮은산:2011)
‘농(農)이 희망이 되는 곳, 판도라마을’ 한승원 외 공저, 오영욱 그림 (도서출판기역:2012)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