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문학동네)

내내 눈물이 전부인 노래를 끝내 뱉는다. 한계가 없는 사람들의 소리는 이런 것인가 싶다. 노래는 떠난 아이에게 묻는 여전히 낯선 안부인사이고, 힘이 되어 달라는 간곡한 기도이다. 또 어떤 날은 뒤늦게 아이의 마음을 듣게 되는 마법이기도 했다가 묵직한 혼잣말이기도 하다. (66쪽)
몇 해 전, 그룹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가 그리 가슴 아픈 노래인 걸 처음 알았던 날, 하염없이 울면서 노래를 들었다. 친한 선배언니가 활동하는 합창단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고 영상을 보내와서 보던 참이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 그 가사 하나 하나에 얼마나 큰 그리움과 아픔이 사무쳤는지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어서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416합창단이 구성되어 활동한다는 이야기에 궁금도 하고, 그 활동이 어떤 위로와 힘이 되어갈 것 같아 기대도 되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는 올해, 그 분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엮은 책이 나왔단다. 합창단 노래 시디가 함께 수록된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 별이 된 아이들을 부르는 세월호 엄마 아빠의 노래’ (416합창단 지음, 김 훈·김애란 글 : 문학동네)가 그것이다.
가족들의 연대의식은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가슴 저리는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임을 연대 공연을 갈 때마다 깨닫습니다. 심장에 고통의 가시가 깊게 박힌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우리 합창단의 저력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심장에 박힌 고통을 일깨워 아픈 사람들을 눈물로 위로하고 노래로 위로합니다. (222쪽)
그래서 내겐 이분들의 합창이 가끔은 노래가 아닌 누군가에게 아주 정성 어린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힘주어 마음을 싣는 게 전해졌다. 가끔은 다음 마디로 건너가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빈 마디를 견뎌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셨을 테지만. 어떤 소절은 부를 때마다 작은 낭떠러지인 양 발이 푹푹 빠지는 일도 흔하셨을 테지만. 그럴 때 나 대신 누군가 빈 마디를 채워주고 또 이어 부르고 나눠 부를 수 있는 게 합창 아니었을까. (50쪽)
416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박미리 지휘자와 함께 하는 류형선 음악감독을 비롯해 김훈 작가 김애란 작가가 글을 보태 내용을 채우고 있는 이 책은, 합창단의 활동이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세월호 유가족인 엄마아빠들의 피 맺힌 울음을 담고 있다. 책은 쉽게 읽혔으나 결코 가볍지 않다. 책 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증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책임을 생각나게 하고 품고 있던 다짐을 다시 한 번 약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합창단의 노래를 듣는 내내,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이런 아픔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노래 할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의 가장 아픈 이별을 한 이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감싸는 노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시디에서 흘러나오는 합창단의 노래는 최고의 음악적 기량을 뽐내고 있진 않다. 하지만, 더 이상 감정에 휘둘려 슬픔만을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아픔과 슬픔이 녹고 녹아 스며들어 이제는 어떤 아름다움으로 피어 향기를 내 뿜고 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결코 물러서지 않을 단단함으로 한발씩 나아가는, 아름다운 노래이자 보듬는 손길이고 끝없는 외침이다.
우리끼리 모이는 곳이 아닌 다른 아픈 곳에 처음으로 찾아간 곳. 추훈 겨울 일본대사관 앞 비좁은 길거리에 계시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갔다. 우리 노래가 무슨 위안이 될까 생각하며 찾아갔지만, 그곳에 가는 것 자체로 마음을 같이 한다는 걸 알았고, 오히려 아픔을 가진 우리도 위로자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 문지성(2학년 1반) 어머니 안명미 (101쪽)
세월호 유가족의 그간의 삶이 그대로 보여 지는 노래-혼자만의 슬픔에 겨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상처 입은 위로자’로써 함께 아파하며 곁에 있겠다는 노래다. 어느새 나도 마지막 트랙에 있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마저도 침묵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세상을 바꾸어 낼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
416합창단이 ‘노래를 불러서 만나고 싶은 너’는,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사랑하는 이들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아픔을 보듬는 작고 흔하지만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리라.
흔하디 흔한 것이 실은 가장 소중하다. 정녕 소중한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어서 다 공짜다. 공짜로 주어진, 흔하디 흔한, 작고 낮고 느려서 더없이 소중한 것. 416합창단이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으로 세상에 귀뜸하고픈 것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95쪽)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문의 062-954-9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