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생활심리]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으며…
“앞으로 퇴직하시면 뭐 하실 거에요?”라고 물으니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혼자 살 계획이란다. 다른 이에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가서 자연인처럼 살고 싶단다. 중년 남성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이 TV프로그램은 9년을 장수하며 400회를 거뜬이 넘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보여주려는 방송이다.
그러나 TV에서 본 것은 전기가 없고, 주변에 사는 사람도 없다. TV속 자연인들은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 여객선도 드나들지 않는 섬에 주로 산다. 전기가 없으니 냉장고, 전깃불, 난방, 세탁기 등등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것이 없다.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면 불을 피워야 하고, 밥이 다 될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 먹고 자고 숨 쉬는 모든 활동이 자신의 순수한 노동 없이는 안되는 생활, 편의시설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불편하기만 이 생활. 대체 무엇이 좋다는 걸까.
어떤 유명 강사는 그랬다. 남편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본다면, 당신과 살기 싫고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라고. 직장생활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아서 치유하고 싶은데 혼자 있는 시간이 그러한 치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자연인이 보여주는 것은 혼자여서 행복한 것도 있다. 상사나 동료에게 치이거나 상처받지 않고 승진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꼭 필요한 일은 자신의 손과 발, 몸을 써서 해결해야 하지만 나머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서류에 모니터에 머리를 쳐박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으니까.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하고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더 이상 누군가의 엄마, 아빠, 선배, 후배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다. 가족, 직장, 학교, 동아리 등등의 사회적 관계가 없으니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니 무언가를 위해 (너무)힘들이거나 (너무)애쓰지 말자! 지치고 상처받고 외로워질 뿐이다. 며칠만 구걸하며 서울역 앞에서 멍하니 멍 때리고 싶은 정도로만 애쓰는 건 어떨까.
자연인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은 욕망. 그것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상담에 종종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우울, 분노, 무기력 등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대신 그들은 가족이나 동료, 친구들과 같이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회적 관념이나 문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 한다. 특히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자연인에 대한 로망은 커지는 것 같다. 중년여성인 ‘내가’ 혼자 살고 싶은 이유는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식구들 수발을 드느라 지치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는 살고 싶지만 가족이랑 헤어지기는 싫고,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으며,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내 손으로 다 하기는 싫은 정도다. .
그러니 무언가를 위해 (너무)힘들이거나 (너무)애쓰지 말자! 지치고 상처받고 외로워질 뿐이다. 며칠만 구걸하며 서울역 앞에서 멍하니 멍 때리고 싶은 정도로만 애쓰는 건 어떨까.
조현미 <심리상담사>
조현미
city@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