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
낚시로의 여행에 대한 단상 1

세월을 낚는 자리.
세월을 낚는 자리.

그곳이 어딘들 상관없다. 낚싯대만 드리울 수 있다면 거긴 천국에 다름 아니다. 쉴틈없이 징징대는 휴대폰의 벨소리도 어지간하며 멈추어 주는 주말, 전화 올 사람은 딱 어머니뿐이다. 연세가 드시니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간이 콩닥거려 다시 추스르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흠이다. 기실 대부분의 전화 내용은 논두렁에 풀이 자라서 베어야 한다거나 열무김치, 깻잎무침, 호박잎 같은 것을 준비했으니 애들과 나눠 먹으라는 것인데도 그렇다. 어쨌든 그거야 닥치면 되는 일이고, 실현 불가능이지만 모든 주말은 낚시를 떠난다는 원칙을 정해 본다. 
나는 자칭 ‘생계형 어부’를 표방하고 산다. 어려서부터 물가를 좋아했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재미난 놀이이며 한편으로는 일용할 탕이나 반찬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가 다슬기를 잡으시거나 토하를 잡는 것을 익숙하게 보아왔고, 외삼촌이 가을걷이가 끝나면 봇물을 터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바위에 여러 풀들을 쑤셔 넣어서 물고기의 은신처를 만들었다가 물을 퍼내서 잡아내는 것을 함께 하면서 자란 탓이다. 
낚시는 초등학교 때 집 뒤의 대나무를 베고, 아버지가 사놓으신 바늘을 명주실로 칭칭 묶은 후, 수수대로 찌를 만들어 동네의 둠벙에서 하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은 후에는 전면 금지였다. 하지만 1976년 광주댐이 들어서고 80년대 무렵 여수로에 물반 고기반이라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되며 진짜 낚싯줄을 사서 깊이가 20여 미터 되는 그곳에서 붕어와 메기를 잡아냈다. 마땅한 놀이가 없을 때 낚시는 어쩌면 먹기 위한 수렵과 놀이의 두 가지 측면을 가졌다. 그때 광주댐에는 낚시꾼이 득실 거렸다. 그분들은 대나무나 시누대를 가지고 낚시를 하는 동네 조무래기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풍경을 낚는 자리.
풍경을 낚는 자리.

대나무 낚시대와 수수대 찌의 추억

첨단과 원시의 극명한 대조. 그런 어느 날 우리 몇몇은 낚시꾼의 낚싯대를 한 대 훔치기로 했다. 행동대장은 나였다. 댐 주위를 어슬렁 거려보니 낚시의자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 뒤에는 낚시 가방이 덩그러니 있었다. 망을 보게 하고 가방에서 포장된 낚싯대를 하나 꺼내서 냅다 튀어왔다. 그리고 수남 학구당 쯤에서 이제 번듯한 낚싯대를 가진다는 설렘과 도둑질을 했다는 두려움 속에서 포장을 열었다. 아. 낚싯대가 아니었다. 낚시꾼은 가방에 낚싯대만 넣는 것이 아니라 낚싯대 받침도 넣는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다시 가져오자는 아이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냥 헛헛하게 낚싯대 받침만 가지고 돌아왔다. 그때 4단 낚싯대 받침 도둑 맞으신 분에게 이 지면을 빌어 사과드린다. 그때 그 순간의 두근거림과 죄의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각설하고 이런 내가 낚시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2000년쯤이다. 당시 갤러리에 근무하는 황호경 큐레이터의 루어낚시에 대한 예찬이 나를 동하게 했다. 해서 둘이 섬진강의 진뫼마을로 쏘가리와 꺾지를 대상어로 삼고 루어 낚시를 갔다. 초보자임에도 꺾지는 술술 따라왔다. 꿰미에 가득한 고기임에도 더 잡을 요량으로 이곳저곳을 향해 던지고 있을 때 바위 단애의 물굽이에 있던 황 선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있다. 5분 10분 15분. 뭐지 저 광경은. 무언가 싶어 가까이 갔더니 이제야 낚싯대를 거두고 온다. 
돌아오는 길, 그 순간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림 같은 풍경화 한 폭이 내 망막과 늑골 깊숙이 자리한 지 모른 채 지나왔다. 지금도 그곳을 가면 내 벗 황호경이 노을 진 강물에 시선을 고정한 체 모든 자연과 공감하던 장면을 연상하게 되었다. 
낚시는 무조건 잡아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연과 몰아일체가 되는 것임을 배웠던 그 시절이 지나고 우리 강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배스가 광주호에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제 스포츠형 루어 낚시로 옮겨 탔다. 토종 어종을 몽땅 잡아먹는 배스를 잡아내어 패대기를 치거나 말라 죽이는 짓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조카들과 갔다가 그들 앞에서 패대기를 치며 배스를 죽였는데, 그런 나를 보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시인인 형의 얼굴이 교차하면서 슬며시 배스 낚시도 접었다.
 2005년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의 추진으로 격랑에 휩싸였다. 서로 잘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들도 깨져 나가는 즈음. 너는 누구편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낚싯대 몇 개와 가방을 장만했다. 우선 익숙한 우리 시골 마을의 저수지부터 다니며 ‘붕애’라고 부르는 작은 붕어를 잡다 어느 날 신안의 섬에 강의를 갔다가 만난 물 맑은 저수지에서 큼직한 붕어를 이십여 마리 잡아냈다. 뭔가 다른 느낌이 왔다. 내 낚시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럼에도 11월의 섬에서의 기억은 내 손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다시 배를 타고 그 저수지를 찾았다. 이번에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수초 사이의 물골이 묘하게 사라져 버린 후였다. 

실전에 기반해 이론을 무장하다

아. 물고기에게도 길이 있구나 라는 생각과 내 낚시의 채비가 정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고 낚시점에 물어보기에는 쑥스러움이 많았다. 그런 저런 고민을 광주드림의 황해윤 기자에게 얘기하며 40센티미터 정도의 붕어를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황 기자는 내게 ‘붕어낚시 100문 1000답’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간 담양 고서, 신안 안좌도, 석곡 반구정 습지를 찾아다니며 부서진 낚싯대만 대여섯 개가 될 즈음에 그 책은 채비를 정밀하게 하는 방법, 낚싯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미끼를 장소에 따라 무엇을 사용하고, 공략하는 대상어에 따라 어떤 장소에 어떤 미끼를 투여해야 하는지 등 너무나 소상하게 나를 가르쳐 주었다. 이를테면 물풀이 많은 장소에는 딱딱한 낚싯대를 넣어 재빠르게 채어내면 수초에 걸리지 않고 쑤욱 가슴께까지 온다는 것(이걸 낚시꾼들은 강제집행이라고 한다),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는 부드러운 낚싯대를 넣어 낚싯대가 탄성을 가지며 휘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추운 겨울에는 붕어도 갈대나 부들이 있는 곳이 그나마 온도가 높아 그곳에 있으니 직공으로 낚시를 해서 잡아낸다는 것 등등. 
실전에 기반한 이론을 익히니 그 다음부터는 가고자 하는 곳의 낚싯대 종류가 달라져야 했다. 그만한 돈이 또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낚시처럼 세상사의 번민을 떨치고 유유자적한 즐길거리는 없는 듯 했다. 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든든했던 초년시절의 조행이었지만 나는 손복이 많은 축에 속했다. 꿈에 그리던 40센티미터가 넘는 붕어도 잡아냈고, 월척이라고 부르는 30.3센티 이상은 그 숫자를 헤아리지 못한다. 앉으면 잡아내고 그 잡아온 물고기는 대인예술시장의 이화점이라는 멋진 식당에서 요리를 해 나눠 먹었다. 잡은 고기의 양이 많을 때는 몸이 허한 선배들이나 후배들에게 기꺼이 고를 내서 드시게 했다. 어느 사이에 난 생계형 어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낚시해서 잡은 고기를 파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민물고기를 좋아하는 이들만 모였을지도 모른다. 
낚시터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일단 주변을 청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갈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다음 편하게 앉을 자리를 찾거나 만든다. 불편한 자세로 시작하면 낚시하는 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가운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참. 기운 같은 것도 있다. 이를테면 낚시를 하고자 하는 장소가 어둑시근하거나 음산한 기운이 도는 곳이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런 곳, 이런 곳에서는 내내 무언가 뒷꽁지를 당기는 느낌 때문에 원하는 휴식도 낚시도 하지 못한다. 밤낚시까지 한다면 이런 곳은 철저히 피해야 한다. 일종의 퇴로 같은 것이 확보되고 불빛이 보이고 환하게 개방된 자리가 오히려 명당이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곳은 철저하게 피할 것이고, 모든 곳이 감싸는 듯한 환경도 좋지 않다. 고기만을 잡기 위해 어부가 택할 곳이지 낚시꾼은 오히려 풍경과 세월을 낚는 자리가 더 명당이랄 수 있다. 

앉을 자리와 피할 자리…

이렇게 앉을 자리를 펴면 그 다음은 그곳에 적격한 사이즈의 낚싯대를 고른다. 나 같은 경우는 통상 두 대나 세대의 낚싯대를 편성하는데, 다대 편성을 하는 이들은 예닐곱 개를 넘어 열두 대, 열다섯 대를 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큰 붕어를 잡기 위한 미끼를 사용한다. 메주콩이나 옥수수 미끼 아니면 민물새우를 끼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조사에 해당된다. 많이 폈다고 많이 잡히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두서너 대를 가지고 있을 법한 자리에 투척한다.
고기가 있는 곳에서는 금방 신호가 온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덤벼드는 붕어들. 성공이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글루텐이라는 떡밥 종류나, 지렁이 미끼를 사용하면 그곳에 어떤 개체의 물고기들이 있는지를 쉽게 파악한다. 잔 붕어들은 지렁이 꼬리를 물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굵은 붕어는 예비신호를 한번 보내고 이내 꿀꺽 삼켜 찌가 떠오르게 한다.  이런 찌를 보노라면 흐뭇함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봇대처럼 꿈쩍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건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이유들은 바닥면에 가스가 차오르며 고기의 접근을 막는 경우, 낚시의 봉돌이 바닥에 닿지 않고 물풀 같은 것에 걸려있는 경우, 붕어를 잡아먹는 천척 가물치같은 큰 고기가 견제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이럴 때는 비껴주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낚시에 입문한 초보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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