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생활심리]
누군가의 죽음, 빨리 잊을 필요 없다
대학교 신입생 때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남자, 그가 아버지가 되어서 자전거를 타는 아들을 걱정한다. 다칠까봐. 그의 걱정은 보호장비를 다해도 계속된다. 때때로 보고 있기 힘들어서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 그는 자다가도 ‘애들에게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불안하다. 아빠는 너무 걱정이 많다고 아이들이 말할 정도다. 그러면 그는 너희들이 크면 더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아내 탓도 한다. 그녀가 아이들 걱정을 하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안 할 것이라고.
3살 때 엄마를 잃고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잃어 할머니 손에 컸던 그는 잘 나가는 공무원이다. 자기 명의의 집도 있고 여행이 취미며 집에는 음악 감상실도 있다. 그런 그의 고민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거다. 40살이 되도록 혼자 살고 있고, 최근 자다가 문득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아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서 결혼하고 싶은데,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단다. 그러면서 그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난다. 불안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이 주요한 내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러한 어려움은 부모나 가족들과 같은 ‘의미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이후 시작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슬픔과 우울, 공허함을 느낄 틈 없이 지냈다고 한다. 장남으로서 부양의 책임을 다하려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족들이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혹은 살아생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미움 때문에. 그들의 죽음을 빨리 잊어야만 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빨리 잊어야 할까.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충분히’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죽음으로 인한 공허함, 슬픔, 죄책감, 분노 등의 고통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며 죽은 사람과의 기억에 몰두하는 것은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본다. 그들에 따르면 애도의 과정이 있는데, 첫 단계는 소중한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죽음을 부인하는 단계다. 정말 일어난 일이 맞나? 되돌릴 수 없는가? 사실로 믿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슬픔에 절규한다. 그러다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무력해지고 깊은 절망과 슬픔을 느끼는 단계가 온다. 이때 죽은 사람과 갈등이 있거나 양가감정 혹은 죽기를 바랄 정도로 증오가 있었던 경우에는 자신의 미움이 그 죽음의 원인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큰 죄책감을 가진다. 자기 비난이 심해지고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중요한 대상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을 혼자 남겨두고 간 것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득 그 사람이 떠오를 때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점차 희미해져서 더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자신만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3~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죽음이나 상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게 되면 누구라도 힘든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무 살 나이에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언제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고, 너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은 사랑을 박탈당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소중한 이들은 지워버릴 수 없고 기억 속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여기 매일 많은,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는 본적도 없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경찰관이다.
낙화
사연 모를 이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며
잠긴 문을 뜯는다
이윽고 눈물로 가득한 축축한 방안
잠든 그녀를 마주한다
다문 입 되뇌이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찾아준 이 없는 고독 속에 남긴 한숨과
찾아줄 이 없는 고통 속에 넘쳐나는 눈물뿐이었을까.
꽃과 같았을 그대의 모습
끝없이 푸른 정원에서
그대같은 꽃들과 함께 하길 빌며
건낼 수 있는 나의 마지막 말 ‘안녕히’
2020. 07. 07 김경찰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