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파트 난방 배관 공사 단상
오늘 아파트 난방 배관 청소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년이 넘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붙어 있는 광고지를 보고 배관 청소를 맡겼다.
오전 10시 30분경 업자가 왔다. 젊은 사람이 둘이다. 한 사람은 수도 계량기가 있는 입구에서, 다른 사람은 보일러 앞에서 작업을 한다. 20여분 지났을까?
“여기 보세요.”
업자가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다. 투명한 비닐이 씌워진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 재채기할 때, ‘에취~’하며 기도에 있는 이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는 것처럼 그렇게 물이 나왔다. 그런데 그냥 물이 아니었다. 주방으로 가서도 보라고 한다.
주방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녹물이다. 그 색깔이 점차 진해지더니 공장의 폐수처럼 새까맣게 되었다. 내 재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 물을 보고 있자니 내 몸 속에 흐르는 피처럼 느껴진다. 북면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건강관리협회에서 건강검사를 받았었다. 그 때 의사는 액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심장이 커졌습니다’라고 했다. 그게 어떤 질병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멍청한 나는 ‘심장이 커지면 좋지’라고 생각했었다.
의사가 염려되는 증상은 서서히 나타났다. 별다른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데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도 피로가 덜 풀린 듯, 감기에 걸린 듯, 소화가 안 되는 듯 했다.
이양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버스로 출퇴근 했었다. 집을 나서면 버스 타는 곳까지 15분 정도 걸렸는데 그 길이 엄청나게 멀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도 서 있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교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 당시 산수동에 있는 P내과에서 약을 타다 먹었다. 의사는 몸의 어느 부위에 이상이 생겼다는 설명도 없이 약을 지어 주었다. 몇 년 동안 다녔지만 치도는 없었다.
회진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관사의 위치가 3층이었다. 그 계단을 올라가는 데 중간에 쉬어야 했었고, 간혹 가슴에서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은 관상동맥이 막혔을 때 나타나는 난 증상이었다. ‘심장이 커졌다’는 것은 내 몸에 나타난 증상으로 보았을 때, 고혈압이 20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말한다. 그것은 관상동맥이 막히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2001년 3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한 것이다. 2004년 4월과 2007년 12월에 재발하였다. 그 결과 내 심장에는 스텐트가 무려 8개나 끼어 있다. 담당 의사는 ‘더 이상 안 됩니다’ 하며 경고했다. 심장병이 재발하면 나는 죽는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도 꼭지에서는 펑펑 소리를 내며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물을 보고 있자니 내 혈관 속의 찌꺼기가 빠져 나오는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곧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그 말, 사람에게 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난방 배관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병균 <시인·수필가·전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