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타버렸어도 ‘다시’를 되뇌이며

올 해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긴 장마 아닌 장마가 겨우 끝나고 간만에 마음 먹고 가족여행을 가려고 했더니 태풍이 온대서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어디나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다니지만 잠잠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운영하는 책방의 여러 일들도 마스크 쓰듯 차단되어 버렸다. 책방을 열고 5년 동안 이런 저런 궁리와 함께 열심으로 달리면 점차 자리도 잡고 여유도 좀 생길 줄 알았는데, 이런!! 현행 도서정가제가 불만이니 더 많이 할인하거나 폐지하라는 요구에 개정시한을 앞둔 출판문화계가 어둡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이려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한다고 될 일은 무엇인지 속상하기만 하다.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래도 내 일상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기후재앙도 코로나도 도서정가제도 내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여지없이 흔들고 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코로나 블루(우울)’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 못지않게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프리랜서 예술가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도 엄중하지만, 일반 시민과 아동청소년까지 일상이 흔들리는 상황이 수개월째 지속되면서 마음의 힘이 무척이나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계층에 따른 지원책 못지않게 사회전반에 깔린 우울함과 위기감을 무엇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혼자서는 힘겨워도 함께 하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내서 무릎은 힘을 주고 한걸음 내딛을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닌가. 책방지기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가 실린 책을 보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이 되고 그런 책에 나온 문장으로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책방지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기도와 행동이 아닌가 싶다. 

네가 사는 곳을 날마다 잘 살펴보렴
하루하루는 다 다르지만
모든 날들이 아름다우니까
‘우리의 모든 날들’ 로맹 베르나르 글그림 (모래알:2020)

이런 낭만적인 말이 무슨 의미가 있고 해결책이 되겠어? 그저 자기위로일 뿐이지…라는 반문어린 속상함이 있지만, 사람들은 오늘 발견한 길 가의 꽃을 보고 잠시라도 미소 짓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SNS에 사진을 올린다. 그렇게 사람들이 애쓰는 눈길들 속에 모든 날들과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엮어 지는 것이다. 답답해하다가도 ‘그래, 인생 뭐 있어? 태양을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사랑하는 존재가 곁에 있으면 되었지’라고 읊조리다가, 그것이 모두인 것을 이제야 알아차리는 요즘이 아닌가. 

세상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지만, 요즘 같이 이 말이 마음에 와 닿는 적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한숨 쉬듯,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라고 하는 말 보다 그림책 하나가 더 밝게 힘차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요리조리 합니다
(중략)
때론 나를 새까맣게 태우기도 하는데요.
그럴 땐 미련 없이 버리세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자, 마음요리가 완성 되었어요
이제 마음을 먹어 보세요.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사는 맛이 달라진대요
오늘은 어떤 마음을 먹었나요?              
‘마음먹기’ 글 자현 그림 차영경 (달그림:2020)

최근에 만난 이 재기발랄한 그림책으로 어느새 마음이 가볍고 밝아졌다. 몽땅 타버렸어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마음만큼 힘이 센 것도 없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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