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생활심리]시간의 속도
오랜만에 통화를 한 지인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냐며,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봄에 보고, 조만간 다시 보자고 했지만 벌써 가을이 한참 지나가고 있다. 두 계절이 지나갔지만 아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바람이 차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래,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신의 시간은 어떤가? 천천히 가는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면 ‘늙었다’고들 한다. 당신의 노화가 시간을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고 믿는가. 혹은 출근이나 등교하기 전의 아침 5분과 점심을 기다리는 5분처럼 각각의 상황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달리 느껴지는가.
먼저 ‘나이’에 따라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나이에 따른 시간의 속도는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공과 같이 가속도가 붙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출발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의 흐름은 더욱 빠르게 느낀다고 본다. 쉽게 말하면 시간의 속도는 1년의 길이를 연령으로 나눈 값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5살의 1년은 1/5로, 50살에 1년은 1/50의 속도로 시간을 경험한다. 뇌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나이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지각한다는 것은 더 확실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1분을 헤아리게 하면 아이들은 1분 전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1분이 지난 후에 지각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시간이 천천이 갔으면 하는데 빨리 가버린다.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으로도 설명가능 하다. 연인과 한나절은 찰나로 느껴지지만 회의하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또 영화를 볼 때, 게임을 할 때, 톡을 할 때, 산책을 할 때 등과 같이 (재미있고, 신나는, 흥미로운, 좋아하는)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실제 시간보다 짧게 인식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시험을 보거나, 일을 할 때 등의 시간은 보다 길게 인식하기도 한다. 심리적 시간은 호기심과 긴장감, 의욕, 집중력 등과 관련이 있는 두뇌활동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지각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는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행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는 경험처럼.
시간의 속도는 절대적이지만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기도 하다. 하루중 가장 빨리 시간이 지나가는 때는 언제일까? 아침 알람이 울린 후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야지 했는데 10분이 휙!하고 지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길도 처음 가봤을 때와 익숙해졌을 때 멀다와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본 사람과 5분을 같이 있어야 할 때와 친한 사람과 함께 있는 5분도 다르게 경험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부터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느꼈나. 또 시간이 빨리 간다는 사실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하루는 24시간, 1시간은 60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흐르고 있는데 왜 시간에 신경이 쓰였는가. 때로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상황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늙는다’는 생각이 들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마음에 불안이나 초조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노화는 할 수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이 많아져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을 갖게 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버려 ‘다시 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자꾸만 시간의 속도를 인식하게 한다.
활을 떠난 화살처럼 무심히 지나가버리는 시간. 쏜살같은 시간을 인식하면서 당신의 생활은 어떤가. 여전한 일상인가. 아니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일상인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면 너무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유를 부리기에는 시간이 빠르게 간다. 글을 마치며 드는 생각은 원고 마감은 정말 빨리 돌아오는데, 벌써 8년째이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