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 낚시로의 여행에 대한 단상(6)
기온차 시시각각 장소 선택서 조과 결정
기후 변화가 밀고 온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간 시대를 상정하는 것은 어느 시대까지 가야할까? 지질학자들은 그것을 신석기 시대로 추정하고 가설을 얘기한다. 또 한편으로는 산업혁명 시기라고 논한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방식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신석기 시대는 인간이 먹을 것을 찾아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대에서 본격적인 농업을 통한 정착 사회로의 이행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산업혁명의 시대는 기계에 기대어 대량생산의 체제로 접어들며 지구의 속살인 광물자원을 파먹기 시작하며 발생한 것을 말한다.
1999년 세기말,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선보였던 와쇼스키 형제(지금은 자매)는 모피어스을 구금한 스미스라는 요원의 입을 통해 인간이라는 동물의 참상을 말한다. 한곳에 머물며 모든 자연자원을 다 파먹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무책임함. 인류가 바이러스와 똑같다고 비난하며 자연의 암적 존재라고 사라져야 한다면서 A.I를 대표해 말한다.
지금 바야흐로 인류세의 시간을 얘기하는 시기로 넘어왔다. 자연에 가한 위해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시간. 그런 시간에 낚시를 하는 것도 어쩌면 생태를 파괴하는 행위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색의 계절인 가을이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이는지도 모르지만 꾼들의 마음은 또 그게 아니다. 청명한 하늘 위로 구름 한 점 흘러가고 물 속에도 그림자 짙게 드리우는 날, 물가를 서성일 수밖에 없는 꾼들. 나도 매 한가지다. 저렇듯이 입바른 얘기를 하면서 이율배반적으로 낚시에 몰입하는 것이 숙명처럼 되어 버렸다. 쓰레기 안 버리고 되가져오기나 최대한 친환경적인 제품을 사용하는 낚시 장비, 소모품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기 등과 같은 작은 실천으로 그나마 자위 해 본다.
23년만에 첫 1박2일 출조나선 사장님
2주 전 단골로 출입하던 낚시점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자그마치 23년을 봉직했던 낚시점을 그만둔 지 얼마 안된 그분이 내게 동행 출조를 가자고 청하신 것이다. 이 분야에 너무나 전문적이면서 또 성실하고 정직하던 분이기에 나는 언제나 낚시터에서의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아 채비를 완성해 갔다. 그러기에 내게도 영광이라며 도시락을 싸들고 1박 2일간의 가을 출조를 갔다.
장소는 곡성의 습지대였다. 3시경 자리를 잡고 옥수수 글루텐을 섞어서 낚시에 돌입했다. 내가 즐겨하던 곳은 당연히 그 사장님에게 넘겨 드리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 낚시를 시작했다. 사실 낚시하는 것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지켜보는 시간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정작 물을 보니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했다. 사장님은 20년만에 1박을 하는 출조라며 설레임을 표현하셨고 그런 설레임은 곧장 외바늘에 전달되어 대형 붕어를 잡는 손맛을 보셨다. 아마 낚시를 시작한지 10여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심은 80cm 정도인 수초 가까이 두 대를 편성하고 맨바닥쪽은 1m 정도의 수심이 나오는 곳인데 그곳에 한 대를 편성한 가운데 입질은 줄곳 수초쪽에서 이어졌다. 캐미컬라이트를 꺾을 무렵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실 차에서 낚시를 하러 가는 곳까지의 거리는 400-500m쯤 된다. 그 사이를 낚시도구를 챙겨서 오고 가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 덕분인지 그 곳 습지에는 낚시꾼들의 출입이 많지 않다. 덕분에 청정한 지역을 유지하고, 어족자원들도 풍부할 뿐 아니라 꼬마잠자리를 비롯한 수생식물들도 많이 분포한다. 특히나 잠자리의 유충은 모기의 유충을 먹기 때문에 그런지 여름철에도 모기가 그다지 없는 곳이다.
왕성하게 발달한 수초는 봄부터 가을까지 물고기들의 은신처이고, 산란장이자 놀이터의 구실을 한다. 이런 천혜의 공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은 사실 물고기를 거저 가져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낚시를 간다고 양쪽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은 너무나 풍성했다. 김치찌개와 묵은지만 있어도 풍성한데, 이것저것 가져온게 많았다. 아마도 사장님의 20년만의 출조를 격하게 환영해주는 사모님의 마음 씀씀이 였을 것으로 보인다. 술도 한 순배 돌았지만 더 마시기를 거절하는 사장님은 마음이 이미 냇가에 있었다.
대충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은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나는 발 난로와 가스 세 통을 챙겼다. 한낮의 기온이 24도였지만, 밤이 되면 5-6도 정도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을 낚시에서 방한 도구의 준비는 필수사항이다.
손님과 출조 고충… 핀잔, 질책, 자존감 다운
다시 편성된 자리로 돌아왔다.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가끔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 고라니의 울음소리만 있었을 뿐. 둘과의 사이가 10m 남짓해도 고기를 잡는 소리까지도 투명하게 들려오는 그런 밤이었다. 하늘의 별들은 곧 쏟아질 듯 물의 표면에서 반짝거렸고, 캐미컬라이트의 찌불은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그 밤의 낚시에 훼방꾼은 수달말고는 아무도 우리 곁에 범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이 첨벙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붕어를 잡아내는 소리였고,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그것은 블루길이었다. 육식어종이었던 블루길은 이제는 떡밥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특히 바늘을 목 안으로 깊숙이 삼키기 때문에 빼내려면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니다. 블루길은 한편으로 월남 붕어라고도 불리는 어종이다. 식용과 방생용으로 도입되어 이 나라 곳곳에 강과 하천과 저수지에 서식하면서 토종 물고기나 새우를 닥치는대로 먹어 없애는 도움이 안되는 어종이다.
비교적 유속이 느린 곳에 살기 때문에 어지간한 낚시터에서는 블루길의 성화에 낚시를 접는 경우도 많다. 우리 둘이서 그날 잡아낸 블루길만 해도 20여마리에 육박할 것이다.
9시 무렵, 사장님의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다급히 가보니 40cm가 족히 돼 보이는 붕어를 잡아내고 계셨다. 녹슬지 않은 낚시 솜씨에 찬사를 보내며 한동안 그 분의 낚시를 지켜봤다.
해가 있을 때 수초를 공략하면서 한편으로는 맨 바닥쪽에 집어용 떡밥을 계속 투척했는데 그 전략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밤이 되니 물고기들의 경계심도 풀어져서 저렇듯 은폐물이 없는 곳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나 보다.
이제 두런거리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한다. 책 장사로 돈은 벌었냐고 물어본다. 웃으면서 물어보는 걸 보니 먼 돈이냐 라는 걸 빤히 알면서 묻는 것 같다. 한달에 한권 정도 팔린다고 했다. 더 크게 웃는다.
그럼 사장님은 23년간 낚시점을 하면서 왜 이렇듯 20년만에 출조를 하는지 여쭸다. 돌아오는 대답은 낚시를 좋아해서 낚시를 다니다 접하게 된 낚시점 영업은 고객 개발이 먼저였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손님들과 출조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핀잔과 질책, 무너진 자존심이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뭔지 알 것 같았다. 여나무명이 낚시를 가면 대상지의 선택은 들려오는 소문에 따라 손님이나 낚시점 주인장이 결정한다. 그리고 출조를 하게 되면 거기서 잡히거나 안잡히거나 모든 탓은 낚시점 주인장이 뒤집어쓴다. 거기에 물과 밥과 술심부름도 주인장의 몫이다. 현장에서 낚시 채비가 엉키거나 고장 나면 즉석 수리도 낚시점 주인의 몫이다. 그러니 그 일이 달가울리 없다.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 앞둔 물고기들 식탐 가장 왕성
갑작스럽게 낚시점을 접은 이유를 여쭤봤다. 너무 오랫동안 낚시점을 지켜오며 보람도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나 진정성 있는 영업을 하더라도 손님의 마음이 상하면 SNS를 비롯한 정보채널에 온갖 욕설과 비방을 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접고자 했는데 마침 적임자가 나타나 후다닥 정리를 하고 당분간 쉬실 참이라고 하셨다.
세상 어떤 일이 쉬울까만은 유형의 것을 판매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가보다 싶어졌다. 나처럼 청년 시절 여행사를 운영하며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유형의 재화를 판매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와 낚시를 하다 깜빡 졸고 깨어나 다시 낚시를 하고 또 졸기를 반복하다 새벽녘이 되었다. 커피를 한 잔 끓여오신 사장님과 잡은 물고기를 비교해보니 내가 40마리, 그분이 30마리 정도 되었다. 그런데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분이 잡은 사이즈는 평균 27-8cm였고, 내가 잡은 것은 24-5cm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같은 물줄기에도 불구하고 호리병처럼 좁아지는 양안의 차이가 물고기의 크기에서도 이렇듯 현격하게 드러난 것이다.
여명이 밝아오고 물고기가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는 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또 한번 최선을 경주했다. 하지만 입질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말뚝처럼 서 있는 찌는 버려두고, 스프같은 누룽지를 먹은 뒤, 우리는 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철수했다.
가을 낚시는 시시각각 변한다. 기온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장소의 선택이 조과를 결정한다. 늦가을의 낚시는 이제 겨울을 지내야 될 물고기들의 식탐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그 절정의 시간에 낚시대를 빼어들고 떠나봄직하다. 이것으로 계절별 낚시 여행을 마친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