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의 생활심리]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 줄이기

존엄사를 다룬 영화 '미 비포 유'
존엄사를 다룬 영화 '미 비포 유'

오늘은 지난주 목요일, 곱디 고운 날 나의 곁을 떠난 엄마 이야기를 해야겠다. 2012년 어느 봄날 혼자서 밥하다 부엌에 불이 날 뻔한 이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요양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했다.

그 후 간간이 자신이 살던 집에 혹은 자식들 집으로 외출 나오시긴 했지만 엄마는 원하지 않았다. 자식이 많아도 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육남매를 둔 엄마는 늘 막내인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했다. 그 아들은 2년 전에 결혼했고 한 살바기 아들을 하나 키우며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엄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제주도에서 받았다. 그날 일정은 우도에서 있었고 오후 2시쯤 우는 동생 목소리만으로도 집으로 와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목요일 오후 6시 이후 광주발 비행기는 6시 10분이 마지막이다. 우도에서 4시 배를 타고, 성산에서 공항까지 빠듯한 시간인데 마지막 비행기는 매진이었다.

다음날까지 엄마가 나를 기다려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무안과 여수로 오는 표를 검색했고 6시 30분 여수행 비행기를 탔다. 늦은 밤 병원에 도착해서 반사 반응조차도 못하고 가쁜 숨을 쉬는 엄마를 만났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면회할 사람도 제한적이었고 시간도 너무 짧았다.  

다음 날 아침 7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12분 후 떠나셨다는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후배에게 우리 엄마에게는 13인의 손주가 있었고, 나름 행복했던 분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그가 ‘왜 엄마의 행복을 언니가 평가해요?’라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남편도 가족도 없이 병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이제 물어볼 사람은 안계시는데....

누군가 그랬다.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이제 요양원 혹은 병원에서 의료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다 가족묘지에 유골함으로 사라질 세대다.

막상 엄마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서서이 죽어간 시간을 생각해 본다. 당신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아마 잘 죽고(well-dying)싶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웰-다잉을 익숙한 환경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고통 없이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엄마는 아니다. 8년 동안 병원에서 환자로 생활했고 임종은 의료진에 의해 인지되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죽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젊고, 건강한)사람들에게 웰-다잉은 살아온 날을 잘 정리하고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죽기 전까지 는 건강해야 한다. 운동이나 건강 검진 등을 통해 자신을 관리해야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의 일상을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현재를 누려야 죽는 순간 많은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주변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면 된다.

사람이 죽는 순간 제일 많이 후회는 ‘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들 중에 자신의 것을 낯선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것도 좋고, 바빠서 못했던 일들도 좋다.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살아있으되 죽어있는 상태로 삶을 연명하지 않는다는 연명치료 포기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다. 호흡기만 떼면 바로 죽음인 상태로 살아있고 싶지는 않다고들 하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의 엄마는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죽는 순간에 존엄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죄송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행복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엄마의 딸로 태어나 그녀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고, 함께 지내온 동안은 행복했다.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고, 키워줘서 감사하며 엄마를 닮은 낙천성으로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미안하고 사랑하며 고마워요!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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