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 ‘좋은 빛, 좋은 공기’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광주와 같은 학살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비델라 군부는 1976년 3월 26일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신군부는 자신들을 저해하는 이들을 살해하거나 실종시켰다. 이때 사망자와 실종자는 최대 3만 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1980년을 전후한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정치상황이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좋은 빛, 좋은 공기’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도시가 흡사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의 형식은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인 데칼코마니의 모양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국가폭력으로 신음하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똑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좋은 빛, 좋은 공기’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대칭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면,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학살 당시를 경험했던 당사자들과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채운다. 그러니까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국가폭력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학살 이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의 자초지종을 관객들이 종합해 내도록 했다. 학살을 경험하고 목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서 역사의 실체에 근접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들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가폭력과 그 이후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주목을 요하는 것은, 학살 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단체를 결성해 저항하는 모습이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 어머니회’와 한국의 ‘오월 어머니회’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학살되거나 실종된 자식들을 위해 결성된 어머니들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집회와 모임을 현재에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두 나라 어머니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듣는 것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두 나라의 신군부가 자행한 학살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5·18당시 신군부의 모진 고문을 견디고 살아남아 훗날 가족을 꾸린 아버지의 고백은 많이 아프다. 고문피해 아버지는 자신의 2세들을 못살게 굴고 폭력을 전염시켰다는 이야기를 힘겹게 내뱉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학살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임을 고발하고 있다.
5·18은 분명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당시 시민군들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면서 옛 전남도청은 절반 가까이 건물이 헐렸고, 건물이 헐리면서 총탄자국이나 혈흔 역시 자취를 감췄다. 역사의식의 부재가 나은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도 '오월 어머니회' 어머니들이 청와대 앞 농성을 통해 도청 복원 약속을 받아냈음을 카메라는 기록하고 있다.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국가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처투성이 인간들을 위무하는 것에는 예술이 제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 영화는 퍼포먼스 장면을 영화 중간 중간에 배치해 상처를 씻김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빛, 좋은 공기’는 학살과 학살 이후를 말없이 지켜보았던 자연풍경을 담아내는 것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 점에서 아들이 죽고 살아갈 힘이 없을 때 어머니를 살아가게 한 것은 쑥갓의 싱싱한 푸르름이었다는 고백은 울림이 있다. 그렇다. 인간을 치유하는 것에는 예술 말고도 자연이 있다.
‘좋은 빛, 좋은 공기’는 상처받은 인간과 이를 치료하는 예술과 자연을 사유하는 영화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