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04]
“토리야.”
살짝 열린 문틈으로 개가 달음박질쳐 나왔다. 개를 쫓아 대문 밖에 나선 할매.
“밤톨같이 쪼그맣고 귀엽다고 ‘토리’여. 식구는 저랑 나랑 둘이.”
오늘 방에서 처음 나와본 할매는 부신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뜬다.
“아이고 햇빛이 너무 감사하네. 그저께는 눈도 그러코 많이 쏟아지더니. 지난 겨울도 고맙네. 마지막으로 눈도 한바탕 보여주고 갔잖아. 오늘 햇빛도 감사하고, 저기 벌써 꽃 핀 것도 감사하고. 요새 쫌 아파서 방구석에서 드러눴다 앉았다만 하고 있었는디.”
남편은 지난해 봄 돌아가시고, 송귀자(83·해남 계곡면 성진리) 할매는 혼자 산다.
대문 옆 돌기둥에 이 집에 이사온 날짜가 새겨졌다. 2018년 11월26일.
고향은 충청도 강경이고, 주욱 서울서 살아온 할매가 빈집을 고쳐 전라도를 터전 삼은 날짜다.
“남편이 몸이 안 좋아서 공기 좋은 데 살라고 돌아다니다 여기로 왔어. 근데 (남편이) 너무 빨리 가불었어.”
대문엔 ‘미세요’라는 글씨가 정성스럽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데서 사는 엄마가 걱정시롸서 우리 둘째 딸이 써놨어. 밀기만 하면 그냥 들올 수 있잖아. 누구든 그냥 대문 열고 집안으로 들오라고. 저 빤짝이도 문고리에다 이삐라고 매달아놓고.”
‘밀기만 하면’ 들어설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경계를 지우는 말. 마음 한 겹만 풀어도 뽀짝 가차워진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김창헌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 2020년 3월호에 게재됐던 원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