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책들] ‘할머니네 집’
지은 글 그림 (이야기꽃 : 2021)

이번 명절에, 결국 또 요양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뵈러 가지 못했습니다. 작년 설 이후 드문드문 겨우 두어 번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허전하고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달 전 출간된 그림책 ‘할머니네 집’(지은 글 그림. 이야기꽃. 2021년 1월 출간)을 읽고는 당장에 나의 ‘어머니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시어머니는 치매로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워 요양병원에 모신지 1년 반 남짓이라 익숙하지 않은 그 거리가 자꾸 마음을 흔듭니다. 친정어머니는 점점 연세가 들어가고 몸에 기운이 없어지니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죽음을 걱정하는 말들을 하셔서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그림책을 만나고는 주변의 이러 저러한 사연으로 가득한 관계를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작가 지은은 할머니 이정하 님을 떠올리며 글과 그림을 짓고 첫 그림책을 냈습니다.

이 그림책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고 합니다. 작가 열 살 무렵 할머니가 집에 오시고 어느새 19년이 지났다고 해요.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고 씌여 있는 걸로 봐서는 갑작스런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진 바람에 딸의 집에 의탁하게 되셨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오자마자 평생 쪽 지어 온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신 할머니’를 작가가 기억하는 것은 병환으로 달라진 할머니가 낯설고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를 돌볼 수 없어진 할머니는, 어린 손녀가 기억하는, 생기발랄하게 춘천 효자동 자신의 집에서 주인으로 집 안팎을 돌보고 모든 일을 척척 처리하던 예전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스무 장 남짓한 그림책에는 할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어린 손녀가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비뚜름하지만 정감 있는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요. 할머니를 살피며 느낀 이야기들과 할머니와 주고받은 대화들이 따스하고 공감되게 적혀있습니다. 

할머니, 저 가요!
-어디를?
서울에 가죠! 가서 공부해야죠!
-이렇게 깜깜한데 가? 호랭이가 잡아간다. 조심조심 가거라. 가다가 재미없으면 돌아오너라.

가끔 주무시는 할머니를 가만히 본다.

할머니의 코 밑에 손을 대 보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날들이 점점 늘어난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우리집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때도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도 한동안 할머니의 방문은 닫혀있지 않을까? 떠나간 사람은 모르는, 남아있는 사람의 시간은 어떨까?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살면서 점점 어른이 된 작가는 할머니를 통해 삶과 죽음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복지관에 가시는 금요일마다 “나 오늘은 집에 간다아! 이따가 나 기다리지 마.”라고 말하는 할머니. 떠나온 지 한참이어서 이제는 남의 집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전에 살던 ‘효자동 집’에 살고 계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집에 간다는 말이 그 ‘효자동 집’만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아 읽으면서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좋았던 시절로 기억되는 그 ‘집’처럼 이젠 좀 쉬고 싶으신 걸까요? 그러면 그 뒤에 남은 우리는 어떨까요? 하는 질문이 계속 뒤따라옵니다. 

 

조용조용 살금살금, 어떤 때는 총총총 걷던 발소리와 박자를 맞추던 지팡이 소리, 집안에 짜랑짜랑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지은 양,”하고 부르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맴 돌겠지.

그땐 거기에 가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효자1동 569-13,
연분홍 앵두꽃이 핀 할머니네 집 

 

그렇게 ‘남아 있는 사람의 시간’을 채워 줄 할머니의 흔적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작가는 이미 알고 있는-언젠가 다가올 그 시간의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 치매환자가 되면 혹은 어떤 기능을 할 수 없는 노화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그 사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어 더 힘든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작가는 할머니가 기억이 뒤섞여 예전 같지 않아도 언젠가 결국 이별을 맞게 되더라도 ‘지은의 할머니’로 남을 거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요. 그래서 이런 변화와 이별이 슬픔만이 아닌 그리움과 따스함 또한 간직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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