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2018 : 민음사)

[동네책방]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2018 : 민음사)

여성과 스포츠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글은 아무래도 여성차별에 대해 논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여자 축구라는 행위가 얼마나 힘겨운지, 특히 왜 힘겨운지, 무엇이 우리를 힘겹게 하는지에 대해 늘어놓게 될거라고. 하지만 에세이스트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제목처럼 우아하고 호쾌하다! 축구를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장애물이나 불쾌한 경험으로만 가득 채운 이야기는 ‘사실’을 고발할지언정 쉽게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이 여성의 한계를 규정하는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을 되짚는 작업은 분노로 주먹을 쥐게 하는 동시에 힘겨워 주저앉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유쾌함과 부러움으로 주먹을 쥐게 한다.
작가는 원래부터 K-리그의 팬이었다. 축구는 월드컵 정도만 유명하고, 일상의 스포츠는 야구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한국에서 국내 축구 리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유별난 일이었다. 거기다 여자가! 작가는 그런 취미생활을 자신의 삶에 더 깊이 들여보내기 위해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을 찾았다. K-리그 골수팬으로서의 이런저런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정작 인간관계를 걱정하며 발 들인 축구팀은 생각보다 그런 방식으로 열성적인 곳이 아니었다. 작가처럼 K-리그에 대한 팬심을 무럭무럭 키워온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선수 출신 몇몇을 제외하면 리그에 대한 관심 자체도 없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가 추천해서, 빈자리를 채워달라고 부탁해서,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그렇게 어쩌다보니 시작해 짧으면 4년, 길면 10년이 넘게 피치 위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뛰는 것이다.
‘그들만의’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일견 부정적인 의미로 보이겠으나, 이것은 고립을 넘어선 자주의 이야기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유명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결국 그것은 어느 정도 규모의 물질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온전히 혼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심정적 공간 또한 뜻하는 것이지 않나?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여성의 역할과 헌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말이다. 작가와 같은 팀에서 훈련하고 달리는 선수들은 리그가 어떻고, 어떤 선수들이 유명한지엔 관심 없다. 그저 이 놀이의 매력에 푹 젖어 각자에게 유일한 축구를 한다. 그들의 안에서 축구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비주류로 배제된 존재가 아닌, 주인공 그 자체다.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43쪽)

아닌게 아니라 아주 멋있다. 2021년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들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의도된 이미지들을 수용하기가 너무 간편하기 때문이다. 부상 투혼이나 빛나는 기술, 어마어마한 연봉 같은 것들이 축구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스포츠는 일반인들이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것, 특히 여성들에겐 더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작가와 함께 뛰는 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 축구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축구의 많은 면을 만나려고 하는데, 그녀들은 오직 자신과 직접 맞닿는 면을 통해서만 축구를 만난다. 그 우직한 집중. 나와 같이 축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43-44쪽)

그렇게 이 책은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해 학술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뜨끈하게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아주 입체적이다. 사람이고, 여성이고, 누군가의 엄마 또는 직장인, 자영업자, 학생이다. 그리고 각자의 삶 한 부분씩을 쪼개어 땀 흘리며 달린다. 공을 차고, 완벽하지 않은 기술로도 즐거워한다. 정말이지, ‘우아하고 호쾌’하다!
안혜민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문의 062-954-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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