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08]
“우리는 이러코 둥글둥글 살아.”
각박한 세상을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이겨내온 어매들은 시방 앉은 자리도 둥글둥글 모태 있다. 별것 없이도 시도 때도 없이 웃음꽃이 와크르 피어나는 그 자리.
트고 주름진 할매의 두 손에 지금 소중하게 모셔진 것은 째깐한 무시 한 조각. 써걱써걱 베먹는다.
웃음도 함께 그 입에 물린다.
“달큰하고 시원하고 진짜 맛나당께.”
“한번 묵어봐” 소리와 함께 채소전의 고산림(78) 할매가 대뜸 내어미는 무시 한 조각.
“내가 뽑아갖고 왔제. 밭에서 농사지어갖고 왔어. 묵고 남은 거 폴 꺼여, 하하.”
할매는 계획이 다 있다. “팔고 남은 무시를 묵는 것이 아니라 묵고 남은 무시를 폴” 계획인 것이다.
무안 일로장 좌판 할매들의 쉴참은 ‘커피 타임’이 아니라 ‘무시 타임’으로 달큰하다.
“무시도 맛있고 짐치에 막걸리 한잔도 맛나고. 팽야 우리는 다 식구들맹이여. 모태서 묵으문 다 맛나.”
그만한 것들로도 고단함은 잠시 물러나고, 생은 잠시 달다.
“아까는 생선장시가 짱애(장어) 한 마리 내놔서 꿔갖고 묵었어. 여그 불에다 뭐이든 다 꿔묵어.”
고구마 팔러 나온 할매는 고구마를 꿔서 돌렸다.
“우리는 주머니 열 필요 없어.” 뭣이 됐든 가지고 나온 것들을 함께 나눈다. 주머니 열 필요 없는, 저마다의 몸공으로 짓고 거둬온 ‘내야(내것)’들의 연대.
“옛날에는 새끼들 키울라고 인심을 맘대로 못썼제. 인자 이름 석 자 좋게 놔두고 갈라고. 머이든 많이 나놔준 인심 좋은 할매라고.”
장꾼으로 살아온 세월이 반 세기 가까운 고산림 할매.
“각시 때부터 장사했제. 너무 곤란하게 살았어. 누가 물 한 그륵만 줘도 고마운 시상을 살았어.”
할매는 육 남매를 낳고 키웠다.
“내가 큰애기때는 보드라왔어. 살다본께 상당히 억척시롸졌제. 안그러문 살 수가 없었제. 암것도 없이 두 주먹만 뿔끈 쥐고 살았응께. 머덜 때는 하래라도 울고시퍼. 하랫내 울어도 끝이 안 날 고생을 하고 살았어. 이날평상 내 몸을 애끼들 못해봤제. 새끼들하고 살궁리 하니라.”
내 몸이 따라줄 때까지는 장에 나오겠노라는 할매.
“새끼들 다 키우고 여우고. 내 할 일은 다 끝났어. 인자는 고생도 아녀. 울 아그들은 맨나 그만 하라고 그래.”
그럴 때면 할매는 손사래치며 선언한다.
“오매, 내 즐거움 막지 말아야!”
“뭐이든지 팍팍 많썩 줘. 긍께 재미져. 싸게 줘불고 누가 한 주먹 더 주라글문 두 주먹 더 줘불고. 나는 공부도 기역 자도 몰라. 그래도 나 죽고 난 뒤에라도 그 할매 인정시롭고 인심 좋은 할매였다고, 이름 석 자 깨깟하게 두고 가문 좋제.”
명예욕은 넘치되 제 이름 석 자 가망없이 더러워진 줄도 모르는 정치꾼들이며 자칭 종교인들이 나대는 세상에서 장터의 필부는 오늘도 이름 석 자를 맑게 닦고 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김창헌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 2020년 3월호에 게재됐던 원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