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관습에 순응하면 어느 순간…
직장인인 그는 작년 초부터 팀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후배들 앞에서 무시하거나 욕설을 부지기이고 후배들에게도 ‘선배 대접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휴가를 못 쓰게 하거나 업무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시 해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팀장이 화를 덜 내겠지 싶었고, 팀원들과 회식도 주선하고 생일을 챙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팀장의 막말이나 괴롭힘은 끝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후배들까지 팀장처럼 자신을 패싱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생각이 많아져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몸에 두드러기나 발진이 생기면서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병원 진단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괴로웠다.
최근 언론보도에 유독 눈에 띄는 기사들이 있다. 아동 학대와 폭력과 굶주림에 의한 사망 사건. 가해자가 아이들의 친부모인 경우도 있고, 입양한 부모일 때도 있고, 계부나 계모인 경우도 있다.
그들은 아이들이 운다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발달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온갖 이유로 때리고 밥을 주지 않았다. 사랑은커녕 기본적인 돌봄의 부재, 방임과 학대로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사건의 연속이다. 대체 그들은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고 죽음에 이르게 할까.
악마여서, 악마보다 더한 악마여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규범에 공감하지 못하여 자신의 이득에 따라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져서 일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죄책감이나 뉘우침의 기색이 없을 때 우리는 그들을 ‘사이코패쓰’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성격적으로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며 공격적인 사람들이 바로 사이코패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 갑질을 하고 학교에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평범한 이웃, 친구들 이기도 하다.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이 악마처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이 있다.
이는 유대인 학살 전범 재판을 본 한 학자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500만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타고난 악마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상사가 내린 명령에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던 평범한 장교들이란다. 그들은 보통의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인 시민이기도 했다. 악랄하고 끔찍한 범죄를 행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거다.
직장에서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팀장의 인간성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그도 한 집의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들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팀장은 어떻게 동료가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괴롭히게 되는 걸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을까.
심리학 실험 중에 ‘권위에의 복종’이란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의 요지는 평범한 사람조차 적당한 권위에 굴복하여 권위자의 명령에 굴복하고, 자신의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여기며 타인을 잔인하고 고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일 장교들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수많은 생명을 가스실로 들여보냈다. 전쟁이 이러한 것들을 잘 보여준다. 전쟁은 어쨌든 적을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기에 살인이 당연한 것이 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벌어지기도 한다.
맹목적으로 명령에, 관습에 순응하는 뿌리깊은 습관 때문에 악마가 된다. 팀장은 팀웍을 위해, 조직을 위해, 업무효율 등의 많은 이유로 부하 직원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며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말을 안 듣는, 밥을 안 먹는, 배변을 못가리는 아이에게 체벌을 통해 밥을 잘 먹게하고, 배변 습관이 길러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도 악마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자신의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그것은 보통의 사람도 악마로 만들 수 있다.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행동을 멈출 것이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