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1, 2 (김탁환 지음. 해냄출판사 : 2021)

‘이야기가 끝나자 주문이 시작되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이 구절처럼, 책을 덮고 나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서야 이야기 전체 맥락이 손에 잡히고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 읽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듯 허전하기까지 했다. 김탁환 작가의 이야기는 늘 매혹적이고 또 그 구성이 방대해서 그걸 따라잡느라 앞뒤를 살피며 읽어야 한다. 

발표하는 작품은 보통 두 권짜리 장편이고, 역사 속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을 만드느라 고증이나 자료 조사에 치밀하기 때문에, 늘 그의 소설은 몇 겹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읽는 맛을 톡톡히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이번 책으로 등단 후 25년간 30종 60권의 책이 출판됐다고 하니, 가히 장편작가가 희귀해져가는 요즘 시대에 대단한 걸음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1, 2 (해냄출판사 : 2021)는 오랫만에 만나는 김탁환 작가의 현대소설이다. 그간 집필한 사회파소설의 경우 현대가 배경이긴 했지만, 사회적 이슈가 아닌 개인으로 시선을 좁혀 욕망과 갈등, 사랑과 성장이라는 주제로 쓴 장편소설을 현대물로 만나기는 첫 등단작‘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살림, 1996) 이후 꽤 오랫만이다. 더욱이 이번 소설은 전작 ‘대소설의 시대’(민음사, 2019) 이후 작가가 앞으로의 소설을 어떻게 집필해 나갈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18세기 조선사회를 흔들며 당대를 풍미했던 소설들의 방식을 닮아서인지 현대소설임에도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구성이어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고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독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3부 24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주인공 유다정의 가방회사‘그레이스’를 배경으로 수많은 이야기와 인물들이 얽히면서 펼쳐진다.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그분들의 절친인 정목의 도움으로 성장한 다정은 연기활동과 아이돌 연습생, 가수데뷔 등 고군분투하며 생을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만난 성공한 청년기업가 독고찬과의 열정적인 사랑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핑계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객 주문에 맞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가방회사‘그레이스’를 창업한다.

가죽장인들과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한 드림팀과 함께‘오더메이드’라는 방식을 더욱 특별하게 하기 위해 만든‘트로이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첫 고객 아서의 주문을 받고 회사는 더욱 발전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메일을 통해 ‘그’의 시각을 담은 아서의 목소리로 원하는 제품을 설명하고, 현실에서 ‘그녀’의 시각을 담은 그레이스의 목소리로 주문받은 제품을 만드는 이야기가 각 장에 걸쳐 이어진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마치 게임 단계별 퀘스트를 풀듯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까지 가서야 비로소 궁금증이 풀린다. 주인공 유다정은 ‘누가 만들어놓은 가방에 또 다른 가방처럼 들어가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키다리 아저씨 신화를 깨고 스스로 성장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작가의 응원 같다.  

작품을 쓸 때 자료조사나 사전 연구를 꼼꼼히 하는 작가이다 보니, 실제로 집필을 위해 가방회사에 1년 동안 주1회씩 목요일마다 출근했다고 한다.

소설에 나오는 회사‘그레이스’처럼 개인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오더메이드’방식의 이 회사에선 스스로를 ‘목요일의 남자’라고 부르며 회의에도 참석하고, 소속 장인들과 만나 작품의 소재인 가방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움직임을 알아갔다고 한다. 

또한 작가가 직접 답사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장소를 떠올리는 것도 읽는 재미가 있다. 눈 쌓인 자작나무 숲과 횡성호수, 새벽녘 임실 옥정호의 운해, 아름다운 영광 백수해안도로, 변산반도의 해수동굴과 해질녘 풍경 등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상징하는 듯한 아름다운 배경들은 작가의 필력으로 인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질문을 삼키자 눈물이 고였다. 고마운 일이다. 이번 생에선 당신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수백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어긋나도 그날 그곳에 나는 없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만인에서 만물로 ‘당신’을 확장하면 이 만남이 더욱 귀하다. 그 사람을, 그 노을을, 그 길을, 그 책을, 그 노래를 만난 덕분에 나는 내가 되었다. 달라진 내 몸과 맘이 묻는다. 어떻게 당신이 내게로 왔지? 
-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소설은 만남과 이별, 삶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또한 사랑이야기다. 작가는 ‘비극’이란 불행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역경을 통해 사람을 성숙하고 고양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 유다정 역시 어려서 부모를 잃은 후부터 여러 사랑을 하고 계속된 역경을 만나고 극복해간다. 그 과정에 많은 만남과 일들이 비극이든 행운이든 유다정을 성장시킨다. 그래서 삶은 인간은 수많은 만남은, 신비롭고 아름답고 응원할 만한 것이다.
이진숙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