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면 고랑 고랑 차나무 가득
수백 수만마리 용 꿈틀대는 듯

빛이 머무는 다원.
빛이 머무는 다원.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고 하지만 또 다른 여행이 찾아온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생애는 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살기 위해 알아가고 그런 바탕에서 놀이를 삶 안으로 끌어당겨 휴식을 취한다. 삶과 앎과 놂은 함께 공존하는 운명 안에 있다.

 ‘놀이하는 인간’을 주창한 호이징가는 놀이 안에 내포된 앎과 삶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공동체성을 확장하며, 사회적 규율과 관습을 익히는 효과를 배양함을 설파한 바 있다. 놀이하는 인간, 노는 인간. 이런 식으로 명명하면 뭔가 규정된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방랑자 같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떠올리게 되며 한없이 부러워진다.

 평일 어느 날, 공원이라든가 유원지 같은 곳을 가면 억울해진다. 꼭 나만 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비교에서 나오는 부러움과 그러하고 싶었지만 못하는 나에 대한 원통함이 불쑥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과 놀이가 양립할 수 있는 직업이란 얼마나 좋은가 생각해 보곤 한다.

 이번의 보성행은 그런 면에서 또 내가 택한 전공과 일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새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보성문화원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는 오봉산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산세가 험하지만, 그 산이 품은 화강암질이 온돌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주거구조에 가장 적격한 돌들의 생산지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보존하고 알리고자 2015년부터 품을 들여왔었다. 거기에 더해 올해에는 어르신들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자리매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곳 오봉산 구역의 온돌 채취 과정, 달구지로 운송과정, 설치과정, 활용하는 상황까지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보성군에서는 이 전반을 문화재로 지정하고자 물심양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 힘이 되어주는 것이 내 역할인지라 보성군 문화원에 들러 이 사업을 전담하는 직원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프로그램을 좀 더 내실 있게 다지는 조력의 시간을 가졌다.

오봉산 온돌 전승하기 위해

 늦은 오전에 시작한 일이라서 점심시간이 약간 경과했지만,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며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양탕집을 권유받았지만 손사래를 치고 백반집을 가자고 했다. 한 동네의 계절과 제철 음식과 인심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가정식 백반을 하는 식당인 데다 유명짜한 음식을 먹고 다니는 것이 어느 덧 습관처럼 베여서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 보고 싶은 탓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권하는 늙고 허름한 노포가 있는 백반집으로 갔지만 점포임대 라는 글이 보였다. 늙으신 노부부가 하는 식당인데 그날그날 찬이 다르게 나오는 집이면서 깔끔한 음식에 주인장의 구수한 입담도 한몫을 하는 집이었다고 한다.

 아쉬움을 달래며 두 번째 집을 찾아 나섰다. 체온을 재고 주소를 적고 앉은 테이블은 이미 한상이 차려졌다. 봄을 담은 반찬들이 조화를 이루며 테이블을 꽉 채운 밥상은 먹음직스러웠다. 새송이, 도라지무침, 오이소박이, 김치, 애호박볶음, 양파김치, 겉저리, 아가미젓, 파지, 미나리무침에 돼지고기볶음, 거기에 시래기 된장국에 쌈까지. 8000원의 식단은 정말 타지에서는 상상도 못할 진수성찬 그 자체였다. 남도여서 행복한 밥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밥상.
행복한 밥상.

10여년 전 서울서 일하다 사직을 하게 되었을 때, 왜 관두냐고 묻길래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국물이 있는 밥을 먹을려고요”. 남도사람들의 이 말을 타관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시절 나와 함께 일하던 벗들이 먹는 것은 죄송스럽게도 내게는 밥으로 보이지 않았다. 컵라면, 샌드위치, 햄버거, 떡볶이, 오뎅, 순대 이런 음식을 점심이나 저녁에 일상으로 먹는 생활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살아서 좋은 세상 만든들, 나와 내 몸이 불행한데, 무슨 소용이냐 싶어졌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1년의 그 생활에서 사료같은 음식이 아닌 나를 키우고 성장시켜줬던 남도의 밥을 떠 올리며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보성의 백반집에서 나는 또 한번 내려오길 잘했고, 오늘 선택한 음식이 지상 최고의 맛이라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천천이 남김없이 먹었다.

역사문화관 실망 뒤로 차밭으로 

 이제 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차를 타고 담양, 광주, 화순을 거쳐 보성에 이르를 때 눈부신 연초록의 향연이 나를 자꾸만 유혹했었다. 광주드림의 창간 17돌을 축하하는 뜻깊은 날의 원고이니 더 잘 써달라는 편집진의 부탁도 사실 저 풍광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어쩌라고 봄빛은 저리 순하고 여린 새순을 키워내며 조화를 부리는지, 그 어떤 글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날, 일은 끝났고 돌아볼 시간은 그랬다.

 마음 먹기 나름. 누구가 바쁘다. 스마트한 세상의 지배하게 들어간 이상, 24시간이 모두 근무중에 속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놀고 있고, 누군가는 울고 있고, 누군가는 일하고 있고, 누군가는 멍하게 자기를 비우고 있다. 나는 어느 측인가 물을 때 그 모든 곳에 내가 있었다. 아름다움에 취해 울고, 우두커니가 되고, 그것을 어떻게든 글과 사진으로 옮기려고 끙끙 대거나 자판을 두드려 대는 일을 한다.

 차는 서서히 보성의 동쪽을 향해 달려간다. 이곳도 엊그제의 순창마냥 도로가 삼팔선을 그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틈 사이로 차밭이 군데군데 보여진다. 옅은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차밭인지라 좀은 위안이 된다. 마치 콘크리트에 푸르름으로 커텐을 친 것 같다고나 할까.

 차는 보성역사문화관에 멈췄다. 자랑할 것이 많은 보성이기에 역사문화관에 담긴 컨텐츠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실망만 잔뜩 들었다. 전시된 모든 것들은 칸막이에 이미지와 텍스트뿐이다. 실물은 한 점도 갖추지 않았다. 이런 곳을 역사문화관이라고 하기에는 창피한줄 알아야 한다. 전라도 삼성삼평중의 하나인 도시이자. 의병의 고장, 백범이 머무르며 후학을 양성했던 고장, 의리와 절개의 고장, 소리의 본향이 바로 이곳인데, 혀를 끌끌차며 문화관을 나왔다.

 봇재다원 맞은편에 3층으로 웅장하게 지은 건물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을 메꿀 방법은 차밭을 어슬렁 거리는 것 말고는 없다. 그래 오늘 나들이는 내용을 담지 말고 보이는 것에 눈길을 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4월의 보성에서는 그러는게 정답 아닌가.

 봇재전망대로 가지 않고 다원을 타고 내려 영천 저수지로 향하는 농로길을 따라 간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가는데 영상 20도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차나무에 머무는데, 절로 발길을 붙잡는다.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을 새싹과의 접촉면에서 발산되는 빛은 무겁지 않았지만 경박하지도 않았다. 마치 초록의 당의정같이 거대한 초록의 벽화 같은 색이 그곳에 떠다니고 있었다. 어쩌지 못해서 안타까운 빛깔은 내 눈에서만 선연할뿐이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색조가 여기 있음에 감탄사만 연발한다.

시공 초월 우리곁에 늘 남아있는…

평지와 사면을 가리지 않고 자라는 차나무.
평지와 사면을 가리지 않고 자라는 차나무.

 급한 경사면임에도 고랑 고랑이 차나무로 가득하니 수백 수만마리의 용이 꿈틀대는 듯 하다. 가파름이 좀 완만해진 차밭에서 세분의 아주머니가 찻잎을 수확하고 있다. 햇차다. 곡우날이니 오늘까지는 우전에 속한다. 볕씨를 뿌리는 날이기도 하니 봄의 마지막 절기가 곡우에 해당되고 오늘을 깃점으로 차는 최상품과 그 아랫 등급으로 나뉜다. 참새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작설차라고 이름하는데, 이제부터는 세작, 중작, 대작으로 분류한다.

 차의 효능이 무엇보다 머리를 맑게하고 명석하게 한다는 점에서 녹차는 스님의 수련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니 인도와 중국을 거쳐 들어온 우리 녹차의 시작을 지리산 일원의 사찰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있다.

여린 새순이 머금은 낙원.
여린 새순이 머금은 낙원.

보성의 오래된 절, 징광사 터에도 이제는 돌보지 않는 차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다. 하동의 쌍계사나, 무등산의 증심사, 담양 광주호 부근의 개선사지 근처에서 만나는 차나무들은 천년의 세월을 우리와 동고동락해온 증거이기도 하다.

 경사면에서 내려와 이제 반듯한 평지를 만나는 영천마을은 20여년전 왔을 때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제 그 농토의 대부분은 차나무로 덮혀 있다. 평지형 차밭은 또 그 나름대로의 운치를 형성한다. 잘 다듬은 울타리 같이, 이제 갓 머리를 깎은 군 입대자 같은 모습에는 어떤 정연함과 엄숙함이 어우러져 있다.

 작년 매서운 한파에 농차도 타 들어가 붉게 변하여 회생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는데, 양명한 봄 볕이 기어코 이들을 살려 놓은게 두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겉은 타 버렸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물길을 뿜어 올리며 때만 기다렸을 것이다.

곡우전 최상의 차를 따는 모습.
곡우전 최상의 차를 따는 모습.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곁의 벗으로 남아있는 차나무를 그저 풍경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미안함이 있지만 이렇게 좋은 날에는 그만큼만 해도 좋다. 차가 가진 좋은 점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풀지 않아도 저 연초록의 색감 만으로 돌아온 봄 앞에 감사 드리며 멀리서, 가까이서, 세밀하게 바라보다 돌아와도 좋을 이 풍경들이 남도의 보성에, 하동에, 강진에, 해남에, 영암에 광주에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가. 여름이 더 빨리 오기전에 한번 떠나 보시길 권한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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