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아담과 이브의 일기’
[작은 책방 우리 책들] ‘아담과 이브의 일기’
미국의 유명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은 마크 트웨인 작 ‘아담과 이브의 일기’(2021, 문학동네)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를 말하지 않고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가 마크 트웨인 말고 또 있을까?”
이 책은 아담과 이브의 상형문자 일기를 번역했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분명하지 않은 날짜와 요일, 아주 낯선 세계관을 그려내는 화자의 목소리를 나열하며 전개된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음알음 알고 있는 세계적인 신화다. 태초의 인간들이, 천국과도 같은 에덴 동산에서 살다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고 척박한 세상으로 추방당했다는 이야기다. 마크 트웨인은 고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사람 사는 이야기로 재해석한다.
신화의 영역에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화자는 신에 가깝다. 세상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아담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말하고, 아담이 ‘외로워 했기 때문’에 그의 갈비뼈를 하나 꺼내어 이브를 빚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의 일기’에서는 다르다.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아담과 이브다. 두 인간의 일기는 아무 전조도 없이 시작된다. 태어나고, 하나님에게 세상 만물에 이름 붙이라는 명령 받은 순간도 없이 아담은 그냥 살아가고 있다. 이브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브는 아담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두 인간에게 놀랍게도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거대한 폭포를 살펴보던 중이었다. 이 땅에서 가장 멋진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것을 나이아가라폭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나이아가라폭포처럼 생겨서란다. 그건 이유가 아니라, 쇠고집이자 바보짓에 불과하다. 내가 직접 이름을 붙일 새도 없다. 새로운 피조물은 내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전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버린다. 그리고 항상 그 똑같은 핑계를 댄다. 그렇게 생겼잖아.
아담과 이브의 일기 11-13p 중에서
아담은 이브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른다. 이 당혹스러운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말은 하나도 하지 않고, 내내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아담이 늘어놓는 일기가 끝나고 이브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완전히 다른 각도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브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자신이 아담을 구원하고 끝없이 돕고 돌보는. 결함과 결함 없음의 관계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의 호감을 사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힘쓴다. 지난 하루이틀 동안 내가 그를 대신해 사물에 이름 붙이는 일을 전부 떠맡았더니, 그 분야에 재능이 없는 그가 크게 안도했으며, 무척 고마워하는 눈치다. 그가 자신을 곤란에서 구해줄 적당한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하지만, 나는 그의 결함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내가 먼저 이름을 지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내 덕분에 그는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모면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결함이 없다.
아담과 이브의 일기 51p 중에서
남성과 여성이기 때문에 보여지는 특성이라고 받아들일 법도 하고, 그렇다면 성별 이분법의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나는 두 존재가 성별을 이야기한 이유가 그들이 우주의 유일한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들은 현실의 인간처럼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불안정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갈등을 겪었다. 다른 어떤 마법이나 신화적인 방식이 아닌,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며 변화를 겪는 식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대방이 상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한 인간적인 로맨스. 경전을 해석하는 색다른 방식에 웃음지으며 읽게 된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