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오늘’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의 감독 이정향이 돌아왔다. 

한데, 간만에 찾아온 감독의 영화에 변화가 감지된다. 이는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앞선 작품들이 대중친화적 소재의 영화들이었다면, ‘오늘’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따져 묻는 철학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겁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그 화법에 있어서 충분히 동시대적이며, 무엇보다도 플롯의 구성은 높게 사줄 수 있는 대목이다.

다혜(송혜교)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약혼자인 상우(기태영)를 뺑소니 교통사고로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다혜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탄원서까지 써주어 죄를 면하게 해준다.

그녀의 가해자에 대한 용서는 선의(善意)를 기초로 했다. 자신의 용서가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고 자신을 마음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녀의 직업은 다큐멘터리 감독. 성당에서 의뢰한 ‘용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것도 실은, 심경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방편일 수도 있다. 영화는 이러한 다혜의 선택이 안일한 것은 아니었는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여 영화는 죄지은 자들의 안위를 주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종교적인 입장과, 다혜의 용서를 가식으로 보는 의견이 대립각을 세우며 진행된다.

다혜의 선의를 거짓으로 보는 일군의 중심에 지민(남지현)이 있다.

이 소녀의 언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민은 명문대를 합격한 똑똑한 친구인데, 집에서는 아빠의 폭력과 이를 묵인하는 엄마, 오빠와 함께 숨을 쉬는 게 싫다. 이런 이유로 지민은 다혜의 영상작업을 도우며 함께 기거한다.

이는 이정향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설정이다. 한 공간에 인물들이 함께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영향을 받는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와 철수, ‘집으로’의 할머니와 상우가 함께 동거했음을 기억해 보라.

다혜와 지민 역시 그러한 관계로 발전한다. 인터뷰 취재를 하러 가는 길에 두 사람이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신을 만나러가는 시각적인 형상화라고 불러도 좋다.

이 장면의 끝에 위치한 하늘을 담아낸 앙각(仰角)쇼트는 그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이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전반부와 대구를 이루는 설정으로, 용서의 윤리학을 하늘보다는 땅에서 찾으려는 의식의 과정처럼 여겨진다.

다혜는 사람들을 만나고 지민과의 부대낌 속에서 자신이 결정했던 용서가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해 간다.

급기야 자신이 용서했던 가해자가 또 다른 살인을 하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음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녀의 섣불렀던 용서는 이제, 다시 사고해야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오늘’이 용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밀양’을 복귀해보자.

신애(전도연)는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여 살해한 박도섭을 용서하러 찾아간 면회실에서 혼란에 휩싸인다. 그녀가 번민 끝에 용서하려 했던 박도섭은 이미 신의 은총을 받아 편안한 마음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나서서 인간을 용서해 줄 수 있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이렇게 `밀양’은 하늘의 용서와 땅의 용서를 오가며 `용서’를 사고했던 영화인 것이다.

‘오늘’역시 `밀양’의 주제와 연장선에 있다.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오늘’이 놀라운 것은 신의 용서를 기다리지 않고, 죄지은 자로 하여금 그 죄로 인해 파생된 죄의 무게를 묻고자 하는 현실인식의 영화라는 점이다.

이로써 한국영화는 ‘용서’를 철학적 인식의 지평에서 사색하는 두 편의 영화를 갖게 된 것이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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