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작은 책방 우리 책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이유진의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는 아토피 환자로서 삶의 경험을 줄글로 남긴 것이다. 작가는 몸의 언어가 세상의 것과 맞지 않음을 드러내며, 그런 순간들이 겹쳐질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세상을 응시하는 방법은 어떠한지.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기준으로 편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끝없는 불편함과 맞서 싸우게 되는데, 이유진 작가의 경우 그것은 단순 불편함 뿐이 아니라 고통, 통증, 생명의 위협 따위로 드러난다. 이 책은 존재한다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투쟁임을 우리와 가까운 언어로 시원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또한 ‘몸’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를 일러준다. 작가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방문했던 운전 학원에서 강사가 운전대 위로 손 겹치며 불필요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후, 아토피 증상으로 인해 ‘괴물’같은 손의 형태를 발견한 강사가 몸시 당황하며 눈을 피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추행도 하기 싫은 몸이라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성추행범도 혐오하는 몸이면 여자로서 안전하게 살 수 있으니 다행하고 기쁜 일인가?’
몇 년이 지났건만 이 물음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늘 함께하지만 낯설기만 한 나의 몸, 내 것이면서도 끊임없이 불화해온 이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이렇게 분열되고 어긋난 나와 몸의 관계를 이제는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서툴더라도 죽기 전에 화해해보고 싶어서.” 이것이 내가 40년 만에 몸에 대해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한 이유다.
60p,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중에서.
몸과 나의 관계가 어긋났다는 느낌. 이 표현을 응시하는 순간 나는 이유진 작가의 몸이 겪는 물리적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굉장히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몸과 나의 관계가 어긋나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시선의 유통기한은 끝없다. 적어도 2021년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의 외형을, 목소리를, 태도를 끝없이 관찰하며 저 사람은 얼마나 익숙한지 저 사람은 얼마나 낯선지 평가한다. 얼마나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확인하고, 비정상일 경우 그는 순식간에 일상적이고 편안한 것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다.
다들 편리하다고 여기는 편의시설을 선뜻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다들 아름답고 쾌적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위해서는 쓰레기 말고 다른 것도 공간에서 제거될 수 있는데, 가끔 이 ‘제거’는 규칙이나 힘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눈치’로 이루어진다. 가해자 개인보다 피해자 개인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이유진 작가는 아토피 환자들 사이에서도 병증이 심하고 덜 심하고의 차이를 느낀다고 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진 환자들이 몸 상태를 기준으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상대방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는 모두 개인이 감당할 필요 없는 이러한 ‘어긋남’에 일종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시선의 유통기한은 끝없다. 아무리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응시하는 순간 파악하고 반응하는 것은 아주 빠르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의식적으로 ‘어긋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알고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그러운’ 병증이라면 환자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 성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진심으로 입은 사람은 잘못된 것이며, 그런 옷을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정상이 아닐거라는 반응. 이런 반응의 폭포 속에서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몸과 영혼의 관계를 끝없이 움직이고 침잠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 모두 존재해보자!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