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사람들] 2부_세상으로 나온 코로나, 이를 막는 사람들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학생운동단체인 전국학생행진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Project People-19’가 최근 인터뷰집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그들을 이야기하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Project People-19’는 지난 3월부터 코로나가 바꾸어놓은 모두의 삶을 들여다 보기 위해 발로 뛰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언제 일을 그만둘지 모르는 특수고용노동자, 양육 부담이 더욱 커진 여성,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 이주노동자, 심각한 과로와 감염 위험에 노출된 보건의료인과 콜센터 상담사, 거리로 쫓겨나고 있는 항공업계 사람들, 더욱 좁아진 취업문에 허덕이는 청년까지….
본보는 ‘Project People-19’가 진행한 19명의 인터뷰를 내용에 따라 4부에 나눠 연재한다. 코로나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주목하고, 그 이면의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 보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Project People-19’의 요청에 부응함이다. <편집자주>
[코로나19 속 사람들] 2부_세상으로 나온 코로나, 이를 막는 사람들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정부는 대구 1차 대유행 때 많은 의료인을 동원했다. 그중에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도 있었다. 이들은 군복무 대신 의료가 취약한 지역에서 다양한 보건 업무를 수행한다. 코로나 시기에는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근무했다. 누구보다도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이다. 프로젝트 ‘PEOPLE-19’은 공보의 나은성(가명) 씨를 만나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수록합니다.
- 많은 독자가 공보의를 생소히 느낄 것 같아요. 자기소개와 함께 공보의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현재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복무하고 있는 나은성입니다. ‘공보의’란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농어촌과 같은 보건의료 취약지역 주민에게 보건 의료를 효율적으로 제공하여 국민에게 고르게 의료혜택을 받게 하고 국민의 보건을 향상하는 데 이바지하는 의사들입니다. ‘국가공무원법 제 26조’에 따라서 보건복지부 산하 임기제 공무원으로 정부 소속 신분이고요. 병역법에 따라 4주 동안 훈련을 마친 후 3년 동안 주로 보건소나 보건지소에서 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질환 치료를 담당합니다. 혹은 국가 지자체, 공공단체가 설립하는 공공병원과 공공 연구기관에 배정되어 일하기도 하죠.
- 코로나 이전에는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비코로나 시기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방문 진료, 시골에 많은 ‘쯔쯔가무시’나 유행성출혈열, B형 간염 예방접종 등이 메인 업무였어요. 워낙 사람이 없는 의료취약지역에서 일하다 보니까 내원하는 환자도 하루 10명 내외 정도로 업무강도 자체는 높지 않았습니다.
- 코로나 대응 시기에는 공공의료인으로서 어떤 일을 담당하셨나요?
△공보의는 대부분 공공 건강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재작년부터는 주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저는 보건소에서 근무했었는데 열이나 기침 등 증상을 가지고 내원한 환자를 선별 진료하는 일을 주로 맡았어요. 다른 공보의들은 경증 환자를 돌보는 생활 치료 센터에서 많이 근무했습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했었기에 그들을 14일간 격리하기 위한 시설을 운영했습니다.
- 현재까지도 코로나 상항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혹시 늘어난 업무가 있나요?
△지금은 예방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서 제가 있는 예방접종 센터에서는 주로 코로나 예방접종을 합니다. 75세 이상 어르신, 요양기관 근무자 총 12,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2차 접종까지 거의 마무리된 상태고, 이 일은 6월 중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7월부터는 학생과 50대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하고요.
‘다음 날 9시까지 대구로 와라‘ 갑작스런 파견
-코로나 1차 대유행 당시, 코로나 전담 의료인으로서 감염위험, 업무부담 등 곤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겪어보신 현장은 어떠셨나요?
△제가 직접 겪은 과로 이슈는 거의 없어서요. 다른 지역 대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당시 전국의 의료진들이 대구로 파견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일하던 곳에서도 공보의를 2명 정도 파견했어요. 그런데 파견 과정이 상당히 갑작스러웠습니다. 전날 7시에 연락해서 ‘다음 날 9시까지 대구로 와라‘ 고 할 정도로 갑자기 결정되었습니다.
파견 근무 와중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검체 채취를 할 때, 본인 감염 차단을 위해 시행령에 적혀 있는 대로 레벨 D급 장비인 방호복을 입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물량이 부족한 때여서 의료인들은 제대로 된 장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AP 가운이라고 불리는 비닐 가운을 입고 검체 채취를 해야 했어요. 코로나 환자 검체 채취를 한 후에는 가래나 체액이 튀어 손에 묻어서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환자 1명당 장갑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라텍스 장갑이나 초창기 감염 차단력이 뛰어나다고 확인되었던 M9 마스크와 같은 장비도 많이 부족해서 거의 2, 3일에 1개씩 바꿀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 혹시 치료상황 외 근무 환경에서의 어려움도 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휴게 시간을 거의 보장받지 못했어요. 하루에 2교대 내지 3교대로 정해진 시간 없이 환자가 밀려오는 대로 무차별적으로 근무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고요. 정부에서도 딱히 파견소 근무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계속 미루다가 반년이나 1년 뒤에 지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문제들이 점차 나아졌어요. 제일 어려움이 심했던 공공병원 간호사보다는 공보의가 덜 고생했던 것 같아요.
초기 감염병 대응 체계 미흡
- 수당이나 추가 의료장비가 원활하게 지급되지 않은 일로 보아서 공보의 파견이 계획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마 감염병 대응 체계 자체가 미비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스부터 시작해서 신종플루, 메르스를 거치며 감염병 대응 경험이 누적되어왔습니다. 신종플루 때까지만 해도 감염병 관련 조치가 미비했었고 그나마 메르스 때 체계가 잡혔어요. 메르스 당시에는 ‘서울 삼성병원’이라는 3차 대형 병원부터 점차 질병이 퍼졌는데요. 심각한 의료체계 실패로 볼 수 있거든요. 그 일에 충격을 받아 만들어진 메르스 대응 매뉴얼이 이번 코로나19 대응 초창기에도 사용되었죠. 그러나 결과는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코로나 대응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만은 상대적으로 감염병 대응 체계가 잘 잡혀 있습니다. 사스에 크게 타격을 받은 후 대만은 감염병과 같은 사태가 터지면, 우리나라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같은 질병관리청 직급을 국무총리급으로 상향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감염병의 유행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민간 병원을 강제 동원하는 정책도 만들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정책이 많이 미흡해요. 특히 코로나 초창기에 제일 동원하기 쉬웠던 공보의를 많이 동원하였는데 공보의는 코로나 교육도 자세히 받지 못하고 바로 업무에 투입된 거라 감염병 대응 전문 인력도 아니었거든요.
-최근 코로나를 계기로 공공의대나 공공병원과 같이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는데 이런 정책들이 실제로 한국의 공공의료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공공의료의 강화는 필요하지만, 적절한 정책은 고민해봐야합니다. 일단 우리나라 공공 의료 비중은 압도적으로 낮아요. OECD 평균으로 볼 때, 공공병상의 비중이 미국은 거의 30~40%대인데 우리나라는 10% 수준이고 의사 수도 OECD 평균에 미달합니다.
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병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같은 정책이 나온 점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이 정책으로 공공병원을 마구잡이로 설립한다 해도 제대로 굴러갈지는 사실상 미지수기 때문입니다. 현행 공공병원들이 잘 운영되지 못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공병원 정책을, 특히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같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통과시키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더불어 공공의대 설립 정책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 수 자체가 부족한 것은 맞지만 의사 수를 올린다고 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공공의료를 위해 헌신할 것인지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일본에서도 해당 지자체에서 1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넣어서 지방 쪽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효과를 봤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결론이 도출되고 있어요. 그래서 무작정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공공의대를 만들자는 주장은 ‘공공 의료기관의 수만 늘리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에요.
“공공의료기관만 늘린다고 문제 해결 안돼”
-혹시 공공의료 관련 문제 외에도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우리나라가 민간 병원을 통제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 큰 문제예요.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민간 대형병원 특히, 대학병원 급의 3차 병원들이 코로나 환자를 받고 있긴 한데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간 병원 입장에서 코로나 환자가 꺼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자신들은 돈을 벌려고 세운 병원인데 코로나 환자를 받게 되면 코로나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어떤 환자도 방문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태도는 당연히 문제로 지적되어야 해요. 병원이 제도상으로 돈을 벌수밖에 없는 구조이건 인정하지만, 의무도 지고 있잖아요. 국가적 차원의 위기인 코로나 상황에서 일을 일부 분담해야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점에 대한 제도적 확충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대만처럼 일정 단계 이상에서는 민간 병원에서 환자를 받거나, 강제로 민간 병원을 동원할 수 있는 등의 제도가 확실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민간 병원을 통제할 수 없는 점이 공공의료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행위별 수가제’ 문제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보통 정부나 의료보험공단에서 의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돈을 지급하는 제도를 ‘수가제’라고 합니다. 이 ‘행위별 수가제‘는 매우 시장적입니다. 의료 행위당 수가를 매겨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간단히 말해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이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처치를 했는지에 따라 돈을 버는 거예요. 그래서 신데렐라 주사, 마늘 주사를 무차별적으로 처치하거나 더 비싼 진료를 하는 것이 민간 의사의 이익창출에 도움이 됩니다.
이 행위별 수가제를 공공의대 문제와도 연결 지을 수 있어요. 지방에서 의사를 기르고 10년 이상 의무 복무를 하더라도 행위별 수가제를 활용해 지방에서 수익 창출을 한다면 결론적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일단 전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자영업자분들과 의료인분들이 대부분 감염병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많이 고생하셨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졸업한 후에 우연히 코로나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한국 공공의료의 민낯을 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공공의료에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생각보다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제도적 확충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의료인으로서 마땅한 수고를 감당해야 하지만, 의료계가 좀 더 원활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두고 여러 논의에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필자: ‘프로젝트팀 PEOPLE-19’ 김유빈 권예진 남진희 문예린 송진아 이형호 정무빈
본 기사는 Project People-19 인터뷰집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그들을 이야기하다’의 일부입니다. Project People-19의 활동은 텀블벅을 통해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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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공보의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공보의가 의료 현장에서 배려 없이 동원된다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1차 대유행 시기에 k-방역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면서 ‘치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예진> 인터뷰를 들으니 코로나 초기대응이 너무 미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좋은 대책이 마련되어 의료계 종사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형호> 정치인들이 감염병 위기 상황을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연관 짓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의 모든 시민과 노동자들이 감염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적절한 의료 행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무빈> 인터뷰를 듣고 우리나라 의사들이 공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행위별 수가제 때문에 사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이 부분을 더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진희> 우리나라의 의료 행위가 너무 경제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까 돈에 따라서 치료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치료에 대해서 비교적 지원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들으며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