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책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이미지=민음사 블로그.
이미지=민음사 블로그.

[작은 책방 우리책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민음사에서는 2016년부터 쏜살문고 총서를 출시했다. 6000원 가량의 가벼운 가격,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 200쪽 안팎의 부담 없는 분량을 핵심으로 잡아 빠르게 쏜 화살처럼 독자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를 담은 민음사의 총서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글들을 부담 없이 집어들 수 있고, 또 쉽게 집어든 만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그 중 비교적 초반에 출간된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여럿을 엮은 단편선이다. 표제작인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기나긴 외출’, ‘분별 있는 일’ 등 총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임경선 작가가 쓴 추천의 말이 책 앞머리에 실려있는데, “아름다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이 단편들의 감성을 아주 적절히 포착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소설이 가지는 매력 중 하나는 빼곡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 얄팍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작가가 구성한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생략하며 집중할 부분들을 조명하기 마련인데, 독자는 그 조명 비춰진 곳을 읽으며 어두운 부분을 상상하게 된다. 서술되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즐거워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의 반짝이는 작가였다는 사실을 2021년에 느끼게 해준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이었다. 100여년 전의 글들을 읽으며 내 삶을 투영할 구석이 보인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비현실적인 상황에 녹여낸 작가의 방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단편 ‘분별 있는 일’은 단편 중에서도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조지는 존퀼이라는 여인과의 사랑이, 오랜 기간 쌓아온 관계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존퀼에게 쉽사리 청혼할 수 없다. 하여 돈을 벌어 결혼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듯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한다. 뉴욕에서 일주일에 40달러를 받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진정한 열정을 둔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그러나 테네시에서 생활하는 존퀼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다며 헤어져야 한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조지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의 마음이 이끄는 것은 사랑과 건축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불안정한지를 되뇐다. 결국 조지와 존퀼은 서로에게 헤어짐을 고한다.

조지는 존퀼과 함께하기 위해 무모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한다. 보험회사 직원 자리 대신 원래의 꿈이던 엔지니어 자리를 좇은 것이다. 그는 페루의 햇빛에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돌아오지만, 존퀼의 사랑은 “사라져 버렸다”. 애인이 생긴 것도 아니고, 약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사라져버린 사랑. 조지는 그 사실에 절망하지만 사라진 사랑은 다시 불탈 수 없고, 그에게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101p,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분별 있는 일’ 중에서.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존퀼과의 사랑은 조지에게서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어떤 감정은 특별한 순간을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피츠제럴드는 말한다. 특별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것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도 마찬가지다. 감히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신과 행운을 거래하려던 브래덕 워싱턴은 스스로 실패를 직감하고 파괴를 택했다. 피츠제럴드는 브래덕 워싱턴의 오만을 설명하며 이런 문장을 사용한다.

그의 말들을 관통하는 단서는 바로 그것이라고, 존은 얼마 후에 깨달았다. 부자가 된 프로메테우스가 잊힌 제사와 잊힌 예식 그리고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이미 오래전에 구식이 되어 버린 기도를 증명해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신이 인간에게서 받아들였던 이런저런 선물을 새삼 언급했다. 신은 역병에 걸린 도시를 구해 주는 대신 대교회를 받았다. 몰약과 황금, 아름다운 여인과 포로, 어린아이와 여왕의 목숨, 숲과 들의 짐승, 양과 염소, 수확물과 도시, 욕망의 대가로 바쳐진 정복지, 신을 달래기 위한 피, 신의 분노를 진정시킬 만한 것 등이었다.
69p,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중에서.

이러한 오만한 인간의 기도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대교회와 황금, 정복지, 피… 전쟁과 부와 밀집된 욕망을 표현하는 이야기다. 그런 것들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 지나가고 만다. 피츠제럴드 자신 또한 1920년대를 살며 수많은 번영, 부, 발달과 소비를 보았으므로 이런 불쾌감을 건드리는 문장들을 엮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드는 것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시간에 지나간다. 우리는 수없이 겹쳐지는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브래덕 워싱턴의 삶? 혹은, 조지와 존퀼의 삶?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문의 062-954-9420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