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고샅길 따라-04

“시골 사는 재미는 저그 밭에 가서 뭣 잔 손대놓고 여그 와서 노는 재미여.” 보성 조성면 우천리 대동마을 모정.
“시골 사는 재미는 저그 밭에 가서 뭣 잔 손대놓고 여그 와서 노는 재미여.” 보성 조성면 우천리 대동마을 모정.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백석, ‘산숙(山宿)’ 중)

그저 네모진 나무토막일 뿐이지만, 여름 모정에 없어서는 안될 긴요한 물건. 목침이다. 바야흐로 모정의 철. 목침이 무심히 저 혼자 누워 있을 일 없이 임자들을 만난다.

“일하고 시방 막 들와.”

“일하다 인자 쉴라고 나왔어.”

오전 일을 끝낸 어매들의 쉴참이다. 약속 없이도 하나둘 모여든다. 보성 조성면 우천리 대동마을 모정.

“여가 우리들 여름 집이고 방이여.”

모정은 여전히 촌 어매들의 핫플레이스다.

“밭에 요새 콩 심으고 풀 나문 풀 매고. 고구마는 인자 심고 감자는 다 캐고. 감자 심으문 감자 나고 콩 심으문 콩 나고. 우리는 그런 시상을 살아.”

누구랄 것 없는, 농가의 ‘월령가’가 읊어진다. 명쾌한 이치 따라 순리대로 산다.

모정 옆에 밥솥이며 그릇이며 포강포강 쟁여져 있고, 도마며 바구니며 가지런하다.

“부엌살림 야무지게 채려놨는디, 여름마동 같이 밥해묵고 살았는디 인자 안해 묵어. 못해 묵어.”

“옛날에는 집집이 호박, 까지, 상추 그런 거 갖고 나와서 밥해 묵었제. 부침개도 해묵고. 얼릉 거석이 없어져불어야 할 꺼인디.”

거석은 ‘코로나’다.

정합순(79), 조점자(79), 정순심(84), 윤춘자(84) 할매가 “몸써리가 나요 그 시상”이라고 입모아 말한다.

“코로나땀시 토옹 못 모탰제. 인자 2차까지 백신 맞았어. 그래도 서로 조심해야제. 안즉까진 맘을 못 놔.”

“덜 갔제만, 안즉 안 갔제만 몬야보다는 더 나서. 각자 집에서 일년내 징역을 살았어. 어서 가불문 쓰겄어. 인자사 요 냥반들 얼굴 보고 살아.”

“나오문 뭐라근께 못보고 살아. 놈의 집에도 못 가고 살았어. 행이나 뭔일 있을깨비. 행이나 놈한테 해를 끼치문 안 되제.”

“자식들도 코로나땀시 오도가도 못하고.”

“모태 살아야 사람 사는 시상인디. 시골은 더군다나 그런 재미로 살아. 서로 모태는 재미, 얼굴 보는 재미로. 시골 사는 재미는 저그 밭에 가서 뭣 잔 손대놓고 여그 와서 노는 재미여.”

“아따 바람 부네. 우리는 에어콩 바람은 벨로여. 여그 나오문 자연바람 불어서 씨언허고 서로 동무해서 이약이약허고.”

“각자 집에 에어콩 있어도 여그가 더 좋아. 노인들은 그래, 나 혼자 시원할라고 못 써. 자식들이 전부 달아줬는디 안 쓰고 딱 덮어놓고 있어.”

“어쩌다 도시 자석들 집을 가도 여그를 오고시퍼서 금방 와불어.”

오전 일 끝내고 모정으로 함께 달려가는 중인 장은희 할매와 개 오천이.
오전 일 끝내고 모정으로 함께 달려가는 중인 장은희 할매와 개 오천이.

이제 막 모정에 들어선 장은희(75) 할매가 “내가 서울 갔다 엊지녁에 온께 내 다리를 보듬고 반가와서 난리굿을 쳐. 다리를 감고 쳐다보고 호딱호딱 뛰고”라고 말한다.

누구 이야긴가. 지정석이라도 되는 양, 모정 아래 폭삭하니 앉은 개 이야기다.

“지가 먼저 꼬리를 치고 앞에 나서. 이 양반들이 이뻬라 한께 여그 오고자퍼서 환장을 해. 말도 다 알아들어. 영리해.”

장은희 할매 말에 정순심 할매가 한술 더 뜬다.

“오천이가 영리한디, 말을 못해. 오천아, 말 잔 해봐라.”
“장에 가서 오천원 주고 샀어. 사람들이 얼매 줬소 물어싸. 오천원, 오천원 대답을 하다가 이름이 되아불었어.”

오천이가 할매와 함께 산 지 5년.

“인자 내 맘속으로는 오천만원도 넘어. 정이 호빡 들었어. 나만 나만 따라댕개.”
동네 개 한 마리 쳐다보고도 다순 정과 웃음꽃이 피는 자리, 모정이다.
글=남신희·임정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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