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은 묘하다. 1, 2, 3, 4와 같은 숫자는 그냥 뚱하게 별 느낌이 없다.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50이 넘는 숫자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러다 0을 본 순간 천사를 만난 기분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탕이 0개일 때는 0이 천사 같지 않다. 0은 싫지만 좋은 면도 있고 좋지만 안 좋은 면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어사전에는 0이 ‘서식 지정 시 유효하지 않은 자릿수를 0으로 채워 표시함’과 ‘값이 없는 수’라고 나와 있다. 0은 유효하지 않은 숫자이다. 즉, ‘아무것도 없다’와 의미가 똑같다.
59와 64같이 큰 숫자들은 0과 달리 매우 꽉 찬 느낌이다. 0의 모양은 동글동글하고 귀엽다. 모양으로 봐선 0도 꽉 찬 숫자 같다. 하지만 나는 0이 꽉 찬 느낌보다는 텅 빈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0 하면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가을 같다.
나에겐 0같이 외롭고 쓸쓸했던 추억이 있다. 내가 아마 6살 아니면 7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 나는 유치원을 10시 30분까지만 등원하면 된다. 나는 늦게 가도 상관없지만 엄마 아빠가 출근 하시려면 적어도 나를 8시 30분 전까지 유치원에 데려다 놓아야 했다.
일어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그때는 힘든 점 없이 친구들 보다 먼저 유치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내가 외로웠던 건 유치원에 도착한 후부터였다. 시각이 여덟시 반인데 어떤 엄마가 아이를 유치원에 두고 간담. 그래서 내가 유치원에 등원하면 늘 선생님들뿐이었다. 나는 심심해서 유치원 곳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아직 친구들이 오지 않아 열어둔 창문과 교실 구석에서 발견된 연필과 지우개, 깔끔한 복도가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나는 배가 차면 배가 아프다. 마침 환기해둔다고 열어 놓은 창문 때문에 배가 아프게 된 것 같다.
아프지만 누구한테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참았다. 괜히 엄마가 미웠다. 암튼 나는 이런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0에의 추억이 있다. 앞으로는 0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예준(장덕초 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