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책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통해 인간이 되는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 오래된 동화이기도 하고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9년 작 디즈니 만화영화인 ‘공주와 개구리’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아닌 여자 주인공이 개구리 왕자를 구하려다 오히려 개구리가 되어버리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역시나 진정한 사랑의 키스로 인해 인간으로 돌아온다. 징그러운 개구리에게까지 입을 맞출 수 있는 엄청난 사랑! 그 사랑은 부와 명예, 잘생긴 결혼상대로 보답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판타지 로맨스가 아닐까.
판타지를 보면서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다정한 판타지가 아니라 슬픈 판타지가 된다. 나에게 이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언제나 슬픈 판타지였다. 개구리가 어때서? 그리고, 개구리가 인간이 된다니? 그걸 즐거워한다니? 어쩌면 고집불통으로 여겨질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툴리오 호다의 그림책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글로연, 2012)는 반갑고 통쾌한 이야기일 것이다.
연못의 개구리 ‘엘레나’는 백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축제가 마뜩찮다. 왕자들이 연못에 나타나 자신만의 개구리를 찾아 입을 맞추면 개구리는 인간이 되는데, 선택받기 위해 치장하는 개구리들이 무어라 말해도 엘레나는 별 생각이 없다. 그는 연못의 풍경이나 벌레 잡아먹는 일이 좋다. 인간이 아닌 개구리가 좋은 것이다. 개구리는 추하거나 벗어나야 할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신붓감을 찾으려는 왕자들에게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자신과 똑같이 주류에서 벗어나 홀로인 왕자가 있지 않은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왕자가! 모두가 성으로 떠나 외로움에도 엘레나는 연못에 머물기를 택했는데, 그 아름다움을 아는 왕자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반가웠던 엘레나는 왕자에게 입을 맞추고, 왕자는 이내 개구리로 변한다. 엘레나가 인간이 되어 함께 연못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마리의 개구리가 즐거이 살아가는 결말을 맞이한다.
로맨스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까? 더 확실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로맨스’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까?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날 거라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환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왕자님이 없더라도 공주님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 새로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멋진 세상으로 향한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는 그 부러움을 멋지게 거절한다!
멋진 집, 멋진 차, 부유한 생활은 경제성장을 아직도 부르짖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황금으로 빚은 궁전처럼 말이다. 햇빛이 내리쬐고 조용한 바람이 부는 연못가는 가끔 놀러가 휴식을 취하는 정도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도시의 삶을, 인간중심적인 삶을 산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작가 툴리오 호다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하지만 이 소확행을 피곤한 일상의 감초가 아니라 만족스러운 일상 그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열심히 살던 와중 너무 피곤하니까 잠시 즐기는 행복. 그것은 소소한 성취와 소소한 행복은 “진짜 노력”이 아니라는 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에는 이 메시지를 향한 질문이 담겨있다. 꼭 ‘왕자’와 ‘공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인간이 아닌 존재도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
오래된 동화에서는 마녀가 인간을 두꺼비로 만드는 것을 저주라고 여긴다. 하지만 몸통부터 개구리로 변해가는 그림책 속 왕자는 참 평안해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성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개구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더더욱 ‘미래’를 찾는 일이 아닐까. 연못의 정취를 느끼고 여유롭게 바람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잃고 있는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삶을,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모가 아닌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문의 062-954-9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