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돈의 맛’

한국 영화감독들의 로망중 하나는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해외영화제 그것도 칸에서 자신들의 신작을 러브콜 해 주기를 고대한다는 말이다. 감독들은 칸을 선망하고, 칸은 재능이 입증된 감독들을 확실하게 챙겨주며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년 전 ‘하녀’를 들고 칸을 방문한 임상수 감독은 영화제의 각별한 귀빈대접에 취했을 것이고, ‘하녀’가 다른 나라에 대거 팔려나가는 것을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의 맛’은 칸영화제의 집행부로 대표되는 서구인들의 시각을 고려해 내놓은 영화라는 혐의를 떨칠 수 없다.

한국의 재벌을 고발해 보겠다는 의도부터가 그렇다. 한데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돈의 맛’에서 그려지는 인물들 중 상당수는 땅에 발 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규모 있는 집이나 실내 인테리어들은 재벌가의 집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곳에서 숨 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재벌들의 모습일까 하는 데에는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윤 회장(백윤식)의 역할만 해도 그렇다. 이 인물은 돈 때문에 재벌가의 딸과 결혼해 재벌의 이익을 위해 한 몸 바친 인물인데, 어느 순간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찾겠다며 방황하다가 좌절되자 자살해 버리는 인물이다.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삶을 지배했던 돈맛을 쉽게 뒤로한다는 것은 당치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자살해 버리자 자신의 인생도 돌려달라고 시체 앞에서 아우성치는 백금옥(윤여정)여사도 꼴사납긴 마찬가지다. 사람이 돈맛에 충실했으면 끝까지 쿨 할 것이지 관 앞에서 질질 짠다는 것은 좀 무리다 싶은 것이다.

하여 윤회장의 과거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주영작(김강우)이 재벌가의 틈바구니에서 험한 꼴을 목격하고 바른 길을 간다는 설정은 힘을 얻지 못한다. 나미(김효진)와의 연인관계가 예견된 것도 무리다 싶긴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돈의 맛’의 인물들은 감독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수아비들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해부를 목표로 했지만, 인물들을 핍진성있게 그려내지 못하면서 좌초하고 만다.

‘돈의 맛’은 섹스신의 연출에 있어서도 전작들의 도발을 포기해 버린 느낌을 준다. 영화 속에서 섹스장면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로비스트인 로버트(달시 파켓)의 난교, 윤 회장과 에바(마오이 테일러)의 섹스, 주영작과 백금옥의 섹스, 주영작과 나미의 섹스 등은 영화 속에서 필요한 장면이긴 하다. 문제는 리얼함이다.

또한, ‘돈의 맛’은 필리핀 여성인 에바를 하녀로 설정함으로써, 인종적인 위계질서라는 뇌관을 건드리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상류층에게 희생되는 이주노동자라는 설정은 분명 의식적인 것이다. 종장에서 주영작과 나미(김효진)가 에바의 고향인 필리핀까지 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 될 수 있을 터인데, 이는 감독이 서구지식인들의 눈에 들려고 발버둥 친 결과다.

‘돈의 맛’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재벌 3세인 윤철(온주완)이다. 그가 주영작과 계급장 떼고 덤빈 주먹싸움에서 주영작을 때려눕히는 장면이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보통사람들이 절대로 재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인상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에서 한국사회의 환부를 예리하게 도려냈던 임상수 감독은, ‘돈의 맛’에 와서 자신의 상상력의 빈곤을 노출했고, 서구의 눈과 귀를 의식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혐의를 남겼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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