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 도가니

 가히 `도가니현상’이라 할 만하다. 영화가 개봉된 후에 연일 뉴스가 만들어지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공지영의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한데 영화가 공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영화 `도가니’는 관객들의 마음 속 밑바닥의 울분을 건드려 내는 힘이 있다. 영화는 공지영의 소설에서 인물구도나 중요요소들을 취하고 있기도 하지만, 각색하는 과정에서 극적구성을 정교하게 구축해 낸 것이 돋보인다.

 시작부터 영화적이다. 강인호(공유)가 새벽도로를 달리는 것과 한 소년의 자살이 교차로 편집되면서, 관객들을 안개에 파묻힌 무진으로 곧장 안내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설정을 살려낸 것으로, 교장(정광)과 행정실장(정광)이 쌍둥이로 등장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쌍둥이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한 명의 연기자가 두 명의 인물을 연기한 후에 합성하여 얻어진 결과물이다. 강인호가 쌍둥이형제를 교장실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괴이한 당혹감’은 관객들에게도 곧바로 전해지고 있으며, 영화적으로도 악(惡)한 존재의 캐릭터가 증폭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최후의 재판정 장면도 무난한 연출이다. 피의자들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후에 이내 법정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때의 화면은 슬로우모션으로 처리되는데, 힘없는 약자들의 편이었던 강인호들의 마음은 물론 관객들의 심상에 분노가 응어리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 사건에서도 없었고, 소설에서도 묘사되지 않았던 시위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장면에서 시위대를 향해 공권력은 물대포를 발사한다. 문제는 그 이미지의 상징성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목소리가 있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는 억압의 대표이미지로서의 물세례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 `도가니’는 `정의’의 추구로 수렴되는 영화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가 심하게 부패되어 있음을 영화는 성실하게 묘사한다. 행정실장이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강인호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에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현금다발을 건네는 강인호역시 무비판적 타락이 내면화되어 있는 모습을 노출한다. 암묵적인 거래의 대가로 돈뭉치를 받아 챙기는 경찰의 태연자약한 모습은 일상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아이들이 당한 성폭력 사건을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떠넘기는 관료들에게서도 추악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종교집단이 종교적 맹신에 가까운 광기를 시위하는 아우성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믿었던 검사의 배신은 관객들의 `정의’에 대한 염원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순간이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해 놓고도, 이를 자신의 사익을 위해 눈감아 버리는 검사의 작태에서 관객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내,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집행유예를 주도한 변호사는 유흥을 즐기는 자리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정의가 승리했다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을 지껄인다. 바로 이 순간 관객들의 ’정의감`은 결속되고 불타오른다.

 황동혁감독은 사회전반적으로 `정의’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 상황을 예의 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세태분석은 결국 `도가니를 통해 관객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든다. 지금 `도가니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를 읽어내는 눈이 밝았기 때문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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